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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밖에서 우주를 껴안다: 생명과 위로를 잇는 화가, 조희재

디아스포라의 낯선 감각을 넘어, 버려진 생명을 품고 캔버스 위에 생명의 우주를 가꾸는 ‘우주의 정원사’ 조희재의 경이로운 예술 여정.

  • 디아스포라의 낯선 감각에서 우주의 유기적 질서로 나아가는 경이로운 여정.
  • 경계 밖의 비정착민에서 생명의 우주를 잇는 연결자로 우뚝 선 작가
  • 버려진 생명을 품어 안고, 캔버스 위에 생명선을 그으며 스스로 위로가 된 예술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가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조희재(Hee J. Jo)는 그저 캔버스 위에 색을 칠하는 시각 예술가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아름다운 찰나의 식물을 다루는 플로럴 디자이너이자,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는 유기견 구조 및 보호 활동가이기도 하다. 모두가 세상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단 한 가지 사실로 “구조해야 할 개들이 너무나도 많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의 깊고 넓은 연민은, 그녀의 예술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꽃과 생명을 돌보고 가꾸는 그녀의 일상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이방인으로서 낯선 세상과 관계 맺으며 자신만의 온기를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캐나다 예술계가 그녀의 작품에 이토록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독특함은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질서로 확장해 내는 탁월한 능력에 있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유화를 섞어 쓰고, 때로는 종이 펄프 같은 혼합 매체(Mixed media)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그녀의 화면은 묵직한 질감과 입체감을 자랑한다. 이 방식을 통해 구현된 '유기적인 형태(Biomorphic forms)'들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살아 숨 쉬는 세포 같기도 하고, 끝없이 팽창하는 거대한 은하수 같기도 하다. 시각적인 질감을 통해 생명의 박동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 끈질긴 작업 방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그림을 그저 바라보는 평면이 아니라 따뜻하게 만져보고 교감하고 싶은 하나의 '생명체'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토록 깊이 있는 작품 세계의 기저에는 그녀가 한국의 대학에서 전공한 교육심리학과 영문학이 든든한 뿌리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대학 시절 이상심리학을 깊이 탐구하며 인간이 감정을 습득하는 방식, 행동 패턴, 그리고 세상이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던졌던 끊임없는 질문들은 그녀 예술의 방법론이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심리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전통과 보편적 가치, 이성적 사고의 틀을 깨고 실험한다. 나아가 대학에서의 학창 시절은 그녀의 내면에 페미니즘적 시각을 단단히 심어주었다. 이는 훗날 여성으로서 겪는 신체적, 심리적 경험을 캔버스 위에 겹겹의 레이어로 시각화하고 해체하는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토록 다정하면서도 치열하게 세상을 탐구하는 그녀에게 작가적 닉네임을 하나 붙여준다면, '우주를 짓는 정원사'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꽃의 숨결을 다루는 플로리스트이자, 상처받은 유기견들을 거두어 마음에 새살을 돋게 하는 그녀의 삶은,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정성껏 가꾸어 마침내 하나의 찬란한 우주로 피워내는 정원사의 모습과 빼닮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캔버스라는 정원 위에 생명의 유기적 형태를 심고, 이민자로서의 상실감과 고독을 비료 삼아 마침내 경이로운 우주의 풍경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2015년 캐나다로 이주한 뒤 OCAD에 진학하여 펼쳐낸 초기 작업들은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솔직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한 결과물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주류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는 뼈저린 자각은 그녀의 붓끝을 날카롭고도 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주민이자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낯선 사회와 마주하며 경험한 문화적·시각적 간극은 중요한 예술적 모티프로 작용했다. 캔버스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화면의 중심에 강렬하게 드러낸 방식은 정체성을 지키고 스스로를 새롭게 선언하는 치열한 자기 표현이었다. 캐나다에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려는 디아스포라적 정서가 캔버스 위로 쏟아진 셈이다.

그렇다면 코리언 캐내디언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랄까? 서울 강남에서 성황리에 열렸던 그녀의 개인전 《Unsettler's Chair(비정착민의 의자)》에서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어딘가에 완벽히 정착(Settle)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상태를 결코 결핍이나 실패로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역설적인 편안함과 유쾌함을 긍정한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단지 소수자의 '소외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적과 인종, 위치나 규모에 상관없이 '현재라는 찰나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모든 덧없는 생명들'에게 건네는 보편적인 연대와 치유의 메시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유기적인 생명력과 우주적 연결성을 다루는 그녀의 추상 작업은, 자연스럽게 스웨덴 작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나 스페인의 조안 미로(Joan Miro)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조희재 작가 본인 역시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로 힐마 아프 클린트, 조안 미로, 그리고 캐나다의 추상화가 잭 부시(Jack Bush)를 꼽는다. 조안 미로 특유의 율동감 넘치는 유기적 형태나, 힐마 아프 클린트의 신비롭고 영적인 기하학적 추상 레이어는 조희재의 작품과 시각적으로 매우 흡사한 결을 지닌다. 하지만 그녀와 거장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클린트가 비전과 신비주의적 영성에 의존하고, 미로가 초현실주의적 무의식의 세계에 집중했다면, 조희재의 작업은 지극히 뼈저린 '현실의 몸'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다. 그녀의 추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이 아니라, 살갗으로 겪어낸 상처가 아물며 만들어낸 흉터이자 생생한 생명의 우주인 것이다. 따라서 이민자로서 겪어낸 생생한 현실 감각이 그녀 예술의 진정한 출발점인 셈이다.

그녀의 이 따뜻하고 묵직한 진심은 캐나다 현지에서도 깊은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그녀의 수많은 작품들은 캐나다의 주요 아트 플랫폼을 통해 활발히 소개되며, 예술에서 위로와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개인 컬렉터들의 공간에 소중히 소장되어 있다. 더불어 2025년 제30회 미시소가 예술상(MARTY Awards) 시각 예술 부문 결선 진출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리빙 아츠 센터(Living Arts Centre)의 상주 작가(Resident Artist)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깊숙이 호흡하고 있다.

‘누가 천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천재성이란 신화(Myth)에 불과하다"고 답하는 조희재 작가. 그녀는 타고난 요행이나 허상 대신, 매일 아침 반려견들의 밥을 챙기고, 식물을 다듬고, 묵묵히 캔버스 앞에 앉아 물감을 덧칠하는 '성실한 사랑의 힘'을 믿는다. 아프고 소외된 생명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그녀의 따뜻한 삶의 태도야말로, 그녀의 캔버스가 그토록 다정하고 거대한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경계 밖의 비정착민에서 생명의 우주를 잇는 연결자로 우뚝 선 이 멋진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가, 앞으로 그려나갈 찬란한 궤도를 벅찬 마음으로 공감하며 응원하게 된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