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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한국과 캐나다는: 10월 12일~18일

10월 12일부터 18일 사이 70여 년에 걸쳐 일어난 한국과 캐나다의 역사적 이정표를 통해 전시 연대와 외교 정상화, 자유무역 협상 및 현대 안보 공조의 흐름을 조명한다.

1950년 10월 15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회동한 웨이크섬 회담에서 한국전쟁 연합군 작전 운용이 중요 의제로 다뤄졌다. 당시 지휘부는 캐나다가 유엔군 지원을 위해 편성한 제25캐나다보병여단의 현지 전개 일정과 연합군 통합 방안을 긴밀히 논의했다. 이 조율을 바탕으로 캐나다 지상군의 한반도 파병이 본궤도에 올랐고 양국 간 군사 협력의 역사적 기초가 형성되었다.

1988년 10월 17일

캐나다 외교관 브라이언 슈마커가 주한 캐나다 대사로 공식 임명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한국의 민주화 추진으로 국제적 위상이 급변하던 시기에 이뤄진 인사였다. 그의 부임 이후 캐나다는 서울 주재 외교 공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빠르게 산업화하던 한국과의 무역 및 실무 네트워크를 전면적으로 확장했다.

2006년 10월 14일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규정한 결의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피터 맥케이 캐나다 외교장관은 성명을 발표해 안보리 결의를 환영하며 전면적인 대북 제재 이행 의지를 밝혔다. 이는 캐나다 국내법상 대북 제재 집행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한반도 비핵화와 안보 분야에서 한국 정부와의 공조를 심화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2007년 10월 12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나흘간 진행된 제11차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공식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양국 대표단은 금융 서비스, 통신, 상용 인력 이동 등 복잡한 쟁점 분야에서 이견을 좁히며 협정문 합의를 진전시켰다. 여기서 축적된 실무적 조율은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훗날 캐나다가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양자 FTA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201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전단 소속 구축함 대조영함과 군수지원함 화천함이 캐나다 몬트리올항에 기항해 친선 교류 일정을 이어갔다. 정전 60주년과 한-캐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600여 명의 한국 해군 장병 및 사관생도들이 캐나다를 방문한 뜻깊은 순간이었다. 몬트리올 항구에서 열린 공개 행사와 기념식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반세기에 걸친 양국 해군 간 우호 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10월 16일

제12차 한-캐나다 포럼이 부산에서 개막해 사흘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양국 정상이 오타와에서 한-캐 FTA 협정에 공식 서명한 직후 개최된 이 회의에는 정관계 인사와 학자, 경제계 리더들이 집결했다. 참석자들은 통상 협정의 조기 비준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원 교역과 안보 협력 다변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2024년 10월 16일

한국과 캐나다는 미국, 일본 등 총 11개국과 함께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MSMT)'의 발족을 공식 발표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해체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다자 협의체를 가동한 것이다. 같은 날 캐나다 해군의 오타와함(HMCS Ottawa)도 대북 제재 감시 작전인 네온 작전(Operation NEON)을 위해 에스콰이몰트 기지에서 출항하며 실질적인 인도·태평양 안보 연대를 과시했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