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한국과 캐나다는: 3월 16일~22일
이 기간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존'을 확인한 시기이며, 스포츠와 인권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통해 서로를 '인정'한 시기이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피의 대가'와 '땀의 가치'를 되묻고자 한다.
1951년 3월 17일
이날은 한국인들에게 '서울 재수복'의 감격으로 기억되지만, 캐나다인들에게는 낯선 도시의 처참한 민낯을 마주한 날이다. 중공군에 밀려 내주었던 서울을 되찾기 위한 '리퍼 작전(Operation Ripper)'이 성공을 거두며, 유엔군은 다시 서울로 진입했다. 이때 캐나다군(PPCLI 제2대대 등)은 단순히 승리자로 입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3월의 차가운 비가 내리는 서울의 거리, 형체만 남은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목격했다. 당시 캐나다 병사들의 일기에는 "도시는 죽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살아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캐나다의 젊은이들이 흘린 피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다.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견뎌준 그 '동행(同行)'의 부채다. 3월 17일은 승리의 날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 캐나다와 한국이 운명 공동체임을 확인한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
2018년 3월 18일
이날은 한국 평창에서 열린 동계패럴림픽(Paralympics)이 폐막한 날이다. 이 날짜가 한-캐나다 교류사에서 빛나는 이유는 한 명의 '영웅' 때문이다. 바로 캐나다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브라이언 맥키버(Brian McKeever)가 주인공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그는 가이드 러너와 함께 평창의 설원을 질주했다. 그는 평창 대회에서만 3관왕에 오르며, 역대 동계패럴림픽 최다 메달리스트라는 전설을 썼다. 한국의 관중들은 국적을 떠나 그의 불굴의 의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캐나다 선수단은 한국의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것은 군사적 지원이 문화·체육적 교류로 승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축제를 열고 캐나다의 영웅을 초대하여 함께 환호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브라이언 맥키버가 평창에서 흘린 땀은, 67년 전 그의 선조들이 한국 땅에서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면서 서로의 무대에서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였다.
3월 21일
이 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이다. 캐나다는 1960년대까지도 '백인 캐나다(White Canada)'정책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71년 다문화주의 선포를 거치며 캐나다는 문을 열었다. 이 날 3월 21일은 이제는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된 한인들이 또 다른 소수자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는 날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려면, 우리 또한 타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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