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한국과 캐나다는: 9월 14일~20일
인천상륙작전의 해군 지원과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문화협력 양해각서 체결에서 FTA에 이르기까지 9월 중순은 한국과 캐나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안보 연대에서 시작해 체육, 문화, 통상 협력으로 지평을 넓혀온 양국 관계의 핵심 분기점을 짚어본다.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바꾼 인천상륙작전(크로마이트 작전) 당시 캐나다 해군의 카유가함(HMCS Cayuga), 수함(HMCS Sioux), 아타바스칸함(HMCS Athabaskan) 3척의 구축함이 제91기동부대 남부전대에 배속되어 제프리 브록 대령의 지휘 아래 참전했다. 이들 함정은 상륙 병력을 태운 수송선단과 군수 보급선을 안전하게 호송하고 서해안 봉쇄를 집행하며 작전 해역의 후방을 완벽히 방어했다. 이는 캐나다 해군이 단독 지휘 편제를 갖추고 한국 방어에 나선 첫 주요 합동 작전으로, 전후 수십 년간 이어질 한·캐나다 군사 안보 연대의 기틀을 마련했다.
1988년 9월 17일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선수 캐럴린 월도(Carolyn Waldo)가 기수로 나서 단풍잎 국기를 높이 들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328명의 캐나다 선수단을 이끌며 당당히 입장했다. 서울 올림픽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성과를 전 세계뿐 아니라 캐나다 시민사회에 직접 증명한 결정적인 공공외교의 전환점이었다. 대회 기간 월도가 2관왕에 오르는 등 경기장 안팎에서 이어진 활약은 캐나다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깊이 새기며 현대적 체육·민간 교류의 물꼬를 텄다.
1990년 9월 19일
서울에서 조 클라크(Joe Clark) 캐나다 외무장관과 최호중 외무부 장관이 정부 간 ‘한·캐나다 문화협력 양해각서(MOU)’에 공식 서명했다. 이 협정은 양국 정부가 학술 공동연구, 박물관 및 미술관 전시 교류, 문학 번역, 공연 예술 등 포괄적인 문화 분야에서 인적·물적 교류를 지원하는 최초의 공식 제도적 틀을 구축했다. 국가 차원의 외교에 소프트파워를 체계적으로 접목한 이 조치는 훗날 영화·방송 공동제작 협정과 상호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었다.
2014년 9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의 초청을 받아 오타와에 도착하며 사흘간의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순방 기간 스티븐 하퍼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캐나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 양자 자유무역협정인 한·캐나다 FTA(CKFTA)에 정식 서명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공식 격상했다. 자동차, 에너지, 농축산물을 아우르는 관세 철폐로 경제적 통합을 도모했을 뿐 아니라 과학 기술 혁신과 북극 공동 연구에 이르는 포괄적 협력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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