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리

설치·혼합매체예술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시련은 때로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권채리(Che Ree Kwon)작가에게 그 시련은 문자 그대로 '물처럼' 들이닥쳤다. 지하 스튜디오를 집어삼킨 갑작스런 물난리는 공들여 그린 그의 작품들과 아끼던 화구들을 훼손시켰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평면의 캔버스 너머 광활한 입체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 권채리는 삶의 파편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우 특별하고도 다정한 예술가라는 평을 듣게 된다. 그야말로 의미있는 전환점에 서있었다.
권채리는 한국의 명문대 회화과 출신의 정통파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캐나다 이주 전에 한국에서 전문큐레이터로 활동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을 조율하며 공간을 해석하던 ‘큐레이터의 시선’은, 이제 창작자가 된 그녀가 작품을 대할 때 객관적이면서도 구조적인 깊이를 더해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이 공간 속에서 관객과 어떻게 만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그녀의 감각은 큐레이터 출신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개성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