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기록으로, 상처를 유산으로
토론토 일본계 사회의 ‘세대(SEDAI) 프로젝트’가 묻는 것
- 2만 명도 안 되는 토론토 일본계 커뮤니티가 일군 집념의 구술사 아카이브 '세대(SEDAI) 프로젝트'
- 표면적인 경제적 성공의 과시를 넘어, 거주국 역사에 새긴 뼈아픈 차별과 극복의 기록
- 우리도 통계적 성과주의와 예산 다툼에서 벗어나, 평범한 이민의 삶을 엮는 사이버 박물관 구축 서둘러야
캐나다의 한국인으로서, 자녀들이 이곳의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가는 동안, 부모 세대인 1세들을 비롯한 이민사회는 과연 이 땅에 어떤 궤적을 남기고 있으며, 또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 사명감 있는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캐나다 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 전체의 기록 문화는 늘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름하여, ‘체계적인 기록의 부재’.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파묻혀있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한인 커뮤니티의 청년세대 일각에서 이민 1세대들의 발자취를 보존하기 위한 ‘사이버 이민사 박물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감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무척 반갑고 시의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리짝을 열어 관련사진도 기증하고, 기억 속에만 머물렀던 풍경과, 커뮤니티에 약이 될 쓴 조언도 아끼지 않겠지만, 하지만, 그 방향성과 실천 방안에 대해서는 타민족 커뮤니티의 성공사례를 거울삼아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론토에 위치한 일본계 캐나다인 문화센터(JCCC)가 운영 중인 ‘세대(SEDAI)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매우 훌륭한 반면교사이자 이정표가 된다. 2004년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주도로 첫걸음을 뗀 이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일본계 이민자들의 세대 간 기억을 이어주는 거대한 구술사 및 사료 아카이브 구축 사업이다. 현재 수백 시간 규모의 인터뷰 영상과 수많은 사진, 문서들을 디지털화하여 전 세계 학자들과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거창한 위인전 대신 평범한 이민자들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오래된 일기장과 낡은 흑백사진은 물론, 어머니가 물려준 오이무침(Sunomono) 레시피나 커뮤니티 요리책(“간장만 넣으면 돼(Just Add Shoyu”)에 담긴 사연까지 촘촘히 수집하여 일본계 캐나다인의 정체성을 인류학적으로 복원해 내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예산을 마련해 온 방식이다. 흔히 동포사회의 굵직한 문화·역사 사업이라고 하면 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세대 프로젝트의 핵심 재원은 일본 정부의 시혜성 예산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캐나다 내부에서, 커뮤니티 스스로의 끈질긴 투쟁과 설득을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 운영된다. 198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성국 국민으로 분류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 수용소(Internment camp)로 끌려가야 했던 2만 2천여 명의 일본계 캐나다인들은 연방 정부로부터 과거의 인권 유린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1,200만 달러 규모의 역사적 보상금(Redress Agreement)을 받아냈다. 이 보상금을 토대로 설립된 기금과, 최근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정부가 과거사를 반성하며 내놓은 1억 달러의 ‘역사적 과오 청산 기금’ 중 일부가 세대 프로젝트의 아카이브 인프라 확충과 구술사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결국 이들은 모국 정부에 손을 벌리는 대신, 자신들이 살아가는 거주국인 캐나다의 역사 속에 새겨진 차별과 인권 침해에 정면으로 맞서 얻어낸 ‘정당한 배상’을 커뮤니티의 뼈아픈 기억을 영구히 보존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본국 정부의 외교적 제스처나 일회성 훈장에 기대지 않고, 철저히 ‘캐나다의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증명해 낸 이들의 성숙한 역사의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론토의 일본계 캐나다인 인구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토록 작은 규모의 소수 커뮤니티가 이처럼 방대하고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뼈아픈 역사를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 인권과 다문화 사회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의 교재로 승화시키려는 숭고한 시민의식 덕분이다. 그들은 아카이브에 특정 개인의 경제적 성공담을 나열하거나 커뮤니티의 외형적 성장을 과시하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평범한 이민자들이 겪은 차별과 정착의 고단함, 강제 수용소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폐목재를 모아 야구라(櫓: 망루)를 세우고 분오도리(盆踊り)춤을 추며 공동체의 존엄을 지켜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며, 우월감의 표출이 아니라 공감을 향한 소통인 것이다. 청년 세대를 연구자로 참여시켜 세대 간의 단절을 막고, 지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역사의 주체임을 깨닫게 만든 점은 진정한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젊은 세대의 한인들이 준비하는 ‘사이버 이민사 박물관’은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이민의 역사를 다루면서, 얄팍한 통계에 매몰되어 주류사회 진입이나 경제적 부의 축적만을 성공의 유일한 잣대로 삼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소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명분 아래, 평판이나 사회적 기여도는 도외시한 채 표면적인 성과주의로만 동포사회를 평가하는 풍토는 반드시 보정되어야 한다. 세탁소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를 견디고, 심야의 편의점 카운터에서 졸음을 쫓으며 청춘을 바친 평범한 우리네 부모님들의 땀방울이야말로 박물관의 가장 중심에 놓여야 할 위대한 사료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역사를 기록하고 계승하는 성스러운 작업조차 본국 재외동포청의 지원금 규모에 목을 매거나, 예산 배분과 주도권을 둘러싸고 커뮤니티 내부의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진정한 아카이브 구축은 번듯한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기술적 과업이 아니다. 이민 1세대들의 생생한 기억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속절없이 흩어지기 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채록하는 치열하고도 지난한 구술사 작업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JCCC의 세대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커뮤니티 구성원 전체가 각자의 집 옷장에 잠들어 있는 빛바랜 사진과 일기장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신뢰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성공사례에 대한 칭찬도 필요하지만, 커뮤니티 내의 예의 없는 결정과 소모적인 갈등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하게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특정 단체장들의 치적을 포장하는 전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국과 거주국 간의 호혜적인 교류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우리가 겪어낸 차별과 극복의 과정을 참여관찰에 입각한 인류학적 연구 자료로서 캐나다 주류사회 학자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누군가의 훈장이나 트로피보다, 초창기 한인 식당의 때 묻은 메뉴판이나 이민 1세대가 남긴 가계부가 이민사의 진정한 맥락을 짚어내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만 명 남짓한 토론토 일본계 사회가 증명해 낸 것은, 확고한 철학과 자발적 헌신만 있다면 숫자적 열세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인 커뮤니티 역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염원을 담아,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 건립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다만 그 동력은 조국 정부의 예산이 아니라, 캐나다라는 다문화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우리가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려는 자발적 의지에서 나와야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캐나다 전체의 교육적 유산으로 탈바꿈시킨 일본계 사회의 지혜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소화할 때, 비로소 우리의 박물관은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이 결여된 기록은 공허한 자기 과시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서둘러야 할 것은, 자랑할 만한 성과를 골라내는 편의적 편집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 상처와 극복이 날것 그대로 엉켜 있는 우리 디아스포라의 삶 자체를 정갈하게 쓸어 담는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직한 '여백' 속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와 이웃 커뮤니티들이 한국계 이민사회를 단순한 경제적 성공 집단이 아닌, 존중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