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캐나다인의 억류 역사가 주는 교훈
기록되지 않은 공동체의 역사는 사라지지만, 기록된 기억은 세대를 넘어 권리와 정체성을 지키는 유산이 된다.
-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 일본계 공동체가 증명한 '기록의 승리', 치욕의 수용소 역사를 국가적 사과와 보상으로 바꾼 힘.
- 표면적 성공을 넘어 우리만의 서사를 구축...사이버 박물관은 미래를 향한 가장 강력한 유산.
누구에게나 ‘이민’은 단순히 사는 곳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캐나다’라는 거대한 다문화 모자이크의 일원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함께 데리고 온 아들딸들을 그동안 캐나다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성장시켰고, 이제 그 장성한 자식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동포 사회의 기록과 역사를 소홀히 다루는 우리 공동체를 바라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갈증과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이 땅에 흘린 땀과 눈물의 가치를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일본계 캐나다인(Japanese Canadian)들의 역사를 냉정하고 치밀하게 복기해야 한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에서 캐나다 정부는 적성 국가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2만 2천 명의 일본계 주민들을 강제 수용소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일궈온 문전옥답과 어선, 가업을 단돈 몇 푼에 강탈당했고, 로키산맥 인근의 황량한 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견뎌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환대가 아니라 추방 혹은 차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1988년, 당시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가 일본계 공동체에 공식 사과하고 3억 달러 규모의 보상안(Redress Agreement)에 서명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결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계 공동체가 수십 년간 축적해온 ‘기록의 승리’였다. 그들은 수천 명의 구술사를 채록하고, 수용소 안에서의 일기, 편지, 심지어 배급표 한 장까지도 사료로 보존했다. 구술사, 정부 기록, 재산 피해 자료 등을 축적하여 국가적 부당행위를 입증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며, 기록되지 않는 고통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격언을 그들은 삶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기억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는 일본계뿐만이 아니다. 유대인 공동체(Jewish Community)는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캐나다의 보편적 인권 가치로 승화시켰다. 그들이 세운 박물관은 단순히 피해를 호소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관용과 평화를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다.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Ukrainian Canadian)들 역시 1930년대 소련에 의해 자행된 대기근(Holodomor)을 집요하게 기록하여 캐나다 의회에서 이를 ‘제노사이드’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크라이나계 공동체의 지속적인 기념·교육 활동 역시 인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에게 역사는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현재의 권익을 지키고 미래의 위상을 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렇다면 우리 한인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K-컬처’의 열풍 속에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민족 못지않게 빠르게 안착했다. 하지만 우리 이민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196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건너온 선배들, 70~80년대 편의점과 세탁소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자식들을 키워낸 올드타이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들이 겪은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정착 과정의 애환은 누가 연구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표면적인 경제 성공이라는 가짜 훈장에 취해, 정작 우리가 이 땅의 주인으로 대우받기 위해 필요한 ‘역사적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동포 사회를 이끈다는 리더들의 모습이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비상식적이고 파행, 명예욕에 눈먼 고성과 삿대질, 그리고 예의 없는 비방전은 우리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먹는다. 일본계와 유대인 공동체는 오랜 기간 기부와 모금, 시민 참여를 통해 역사 보존 기관을 구축해 왔으나, 우리 리더들은 한 뼘도 안 되는 권력을 쥐기 위해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사회적 기여는 도외시한 채, 오직 모래알 의자에 앉는 것에만 집착하는 리더십으로는 결코 주류 사회의 존경을 끌어낼 수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인구 센서스나 경제 지표 같은 무미건조한 통계 너머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 학계와 정부는 책상 머리에서 나오는 탁상행정식 동포 정책을 멈추고, 현장의 숨소리를 담는 인류학적 질적 연구에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겪는 실존적 고뇌와 정착의 질적 변화를 추적하는 살아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것이 ‘캐나다 한국인의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 구축을 촉구하는 이유다. 사이버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1세대의 희생과 2세대의 성취를 잇는 다리이며, 조국(Fatherland)과 거주국 사이의 호혜적인 교류사를 증명하는 기록 보관소다. 또한, 내부의 비상식적인 결정을 견제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엄정한 역사적 법정이기도 하다. 기록이 두려운 리더는 사욕을 부리지 못할 것이며, 기록을 가진 공동체는 타 민족의 편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다.
장성한 우리의 아들과 딸이, 그리고 수많은 이민자의 자녀가 한인 사회를 자랑스러워하며 기꺼이 그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가 보여준 ‘이상한 편견’과 ‘물질 만능주의’를 걷어내고, 일본계 공동체가 보여준 것과 같은 ‘기록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가 겪은 아픔과 극복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류 사회에 알릴 때, 우리는 비로소 캐나다라는 나라의 진정한 주인 중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민은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 창조의 과정이다. 올드타이머의 경험과 뉴커머의 역동성이 ‘기록’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하나로 녹아들어야 한다. 뜻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우리 공동체의 환부를 질책하고, 동시에 우리가 나아갈 밝은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기록하는 공동체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이버 박물관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의 진솔한 삶의 기록이,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가장 값진 유산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질책은 아프지만 성찰은 달콤해야 한다. 일본계 공동체의 사례를 거울삼아, 이제 우리도 펜을 들어 우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자. 그것이 이 땅을 먼저 일궈온 선배 세대의 책임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진정한 가치다. 역사는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모두가 그 역사의 저자임을 잊지 말자.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