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라는 이름의 부끄러운 장벽
건강한 한인 공동체는 배척이 아니라 환영에서 시작된다.
- 알량한 권위의식을 버리고, 변화한 이민의 생태계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 먼저 온 이민자는 ‘주인(Master)’이 아니라 ‘안내자(Guide)’여야 한다.
- 이제 ‘텃세’의 문턱을 허물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개방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북미를 중심으로,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동포사회의 저력은 실로 대단하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비즈니스를 일구고, 자녀들을 주류 사회의 리더로 키워낸 그 끈기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자부심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오늘 우리는 그 그림자, 우리 안의 부끄러운 민낯인 ‘텃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비단 한 도시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며, LA와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한인 사회가 공통으로 앓고 있는 고질병이기도 하다.
이민 사회에서 ‘먼저 온 사람’은 그 자체로 생존의 교과서이자 길잡이였다. 70년대, 80년대 이민 선배들이 겪은 언어 장벽과 인종 차별, 그리고 육체적 고단함은 훈장이 되어 마땅하다. 그들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 후배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존경받아야 할 그 ‘선배’의 위치가, 어느 순간부터 신규 이민자를 감시하고 훈계하며 배척하는 ‘기득권’으로 변질되는 순간, 공동체의 건강성은 무너진다.
흔히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갓 이민 온 후배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내거나 단체 활동에 참여하려 할 때, 격려보다는 “여긴 한국과는 달라”라거나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식의 핀잔이 먼저 날아든다. 심지어 거주 연수를 따지며 서열을 매기고, 자신들의 방식에 따르지 않으면 ‘물 흐리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따돌리기도 한다. 이른바 ‘연조(年條)’라고 하는 ‘이민 햇수’가 계급장이 되는 기이한 구조다. 이는 고생해서 얻은 노하우를 공유하는 멘토링이 아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자르는, 비겁한 ‘사다리 걷어차기’에 가깝다. 우리는 왜 이토록 폐쇄적인가. 이를 반성하기 위해 타 민족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캐나다 내 유대인 커뮤니티를 보자. 그들은 신규 이민자를 ‘도와줘야 할 대상’을 넘어 ‘커뮤니티를 강하게 만들 새로운 혈액’으로 본다. 토론토의 Jewish Free Loan Toronto (JFLT) (구 Hebrew Free Loan Association(히브리 무료대출협회))는 1924년부터 지역 유대인공동체를 대상으로 무이자 대출을 제공해 온 비영리 사회복지기관이다. 먼저 자리 잡은 변호사, 의사, 사업가들이 멘토링 그룹을 조직해 신규 이민자가 주류 사회에 안착하도록 돕는다. 그들에게 텃세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유대인의 유입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파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들에게 10년 먼저 온 것은 권력이 아니라, 나중에 온 형제를 끌어줘야 할 의무일 뿐이다.
중국계 이민 사회, 특히 홍콩과 본토 출신들의 결속력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밴쿠버의 리치먼드나 토론토의 마캄 지역을 보면 그들은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신규 자본과 인력을 끊임없이 흡수한다. 기존의 화교 상공회의소나 향우회는 신규 이민자의 자본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순환하도록 유도하며, 그들이 가진 최신 기술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그들은 텃세를 부리는 대신, 판을 키워 ‘차이나타운’을 넘어선 거대한 경제 블록을 구축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우수한 경력을 쌓고, 상당한 자산을 가지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들어오는 3040 세대의 신규 이민자들을 우리는 제대로 품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들은 한인회나 기존 단체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 아니, 넘지 못한다. 고루한 의전,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꼰대 문화에 질려 발길을 돌리는 건 아닐까. 더 심각한 것은 이 ‘텃세’가 1.5세, 2세들에게까지 미치는 악영향이다. 캐나다에서 교육받고 주류 사회에 진출한 유능한 차세대들이 한인 커뮤니티 활동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숨 막히는 서열 문화다. 젊은 변호사, 회계사, 아티스트들이 한인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도, 기득권을 쥔 어른들이 쳐놓은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좌절한다. 결국 그들은 한인 사회를 떠나 주류 사회로 흩어진다. 이것은 명백한 인재 유출이며, 동포사회의 미래를 갉아먹는 자해 행위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텃세라는 낡은 외투를 벗어던지고, ‘열린 이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온 이민자는 ‘주인(Master)’이 아니라 ‘안내자(Guide)’여야 한다. 내가 겪은 고생을 후배가 겪지 않게 하는 것이 미덕이지,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보상심리는 폭력이다. 2000년대 이후의 이민 트렌드는 생계형 이민에서 투자, 전문직, 유학 후 이민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민 선배들은 자신의 잣대로 신규 이민자를 재단하려 하지 말고, 그들이 가져온 새로운 시각과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시스템을 통한 통합이다. 유대인 커뮤니티처럼 신규 이민자 정착 지원을 위한 실질적인 기금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밥 한 끼 사주며 훈계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능별, 연령별로 세분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신규 이민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그 고마움을 다시 커뮤니티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커뮤니티의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오랫동안 ‘캐나다 한국인의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 구축을 주장해왔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민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역사를 사유화하고 권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정한 사료(史料) 앞에서는 10년 된 이민자나 1년 된 이민자나 평등한 역사의 구성원이 된다. 실패의 역사도, 성공의 역사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신규 이민자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넷째, 정책 당국과 연구자들의 관심도 촉구한다. 재외동포청이나 관련 기관은 단순히 한인회장 몇 명을 불러 간담회를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현지의 ‘텃세’ 문화가 어떻게 인적 자원의 결합을 방해하고 있는지, 왜 유능한 한인 인재들이 한인 사회를 이탈하는지에 대한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커뮤니티 문화를 조성하는 단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정책적 개입도 고민해볼 시점이다.
지금 캐나다는, 그리고 전 세계는 다문화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융합하는 거대한 용광로다. 이 속에서 우리끼리 담을 쌓고 텃세를 부린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게토(Ghetto)’에 가두는 꼴이 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동포끼리는 배타적인 이중성을 버려야 한다. 커뮤니티 미디어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영상으로, 음악으로, 목소리로, 그리고 기사 한 줄로 전해지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낯선 땅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두 알고 있다. 신규 이민자에게 필요한 것은 엄격한 검열관이 아니라, 따뜻한 이웃이다. 내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한국인 커뮤니티는 참 합리적이고 따뜻한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 우리 세대에서 ‘텃세’라는 단어를 박물관의 유물로 보내버려야 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앞물결이 뒷물결을 막으려 하면 물은 썩고 넘쳐흐른다. 흐르는 물처럼, 선배 세대는 후배 세대에게 길을 터주고, 후배 세대는 선배 세대의 노고를 인정하며 함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디아스포라의 지혜이자, 우리가 이 땅에서 존경받는 민족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 이민 연륜을 자랑심는 당신은 텃세를 부리는 기득권인가, 아니면 손을 내미는 선배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할 시간이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