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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만드는 슬픈 자화상

이민은 서열을 옮겨오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다시 배우는 일이다.

  • “한국에서 뭐 하셨어요?”라는 질문 뒤에 숨은 서열 가르기, 우리를 갉아먹는 고질병이다.
  •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직업의 귀천을 허문 타민족 공동체에서 배우는 진정한 품격.
  • 과거의 직위와 현재의 부로 타인을 재단하는 편견을 버려야 자랑스러운 공동체가 열린다.

이민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탈출’의 성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자녀들에게 나타난다. 아이들이 직업의 귀천 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타인의 배경보다 그 사람의 현재 인품을 먼저 보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 그렇게 되면 그것이 이민 생활에서 거둔 가장 값진 결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문법과 달리, 우리 한인 사회 내부에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과 이상한 편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많은 한인 이민 사회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을 때 빠지지 않는 이런 질문이 있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혹은 “어느 대학 나오셨나요?”라는 물음이다. 언뜻 평범한 대화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상대의 사회적 배경이나 위치를 가늠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가졌던 직업이 화려하지 않거나, 학벌이 소위 ‘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은근히 배척하거나 하대하는 풍토는 우리 공동체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는 캐나다의 비교적 평등한 사회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한국 사회에서 익숙했던 학벌 중심적 사고나 위계 의식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편견은 직업의 귀천으로 이어진다. 이민 초기, 생계를 위해 편의점이나 세탁소, 청소업에 뛰어들었던 일부 이민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는 데 부담이나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는 개인의 자존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의 리더를 뽑거나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도 실무적 능력이나 헌신성보다는 과거의 배경이나 현재의 경제적 성공만을 척도로 삼게 만든다. 사회적 기여도는 도외시한 채 표면적인 부의 축적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풍토가 만연해지면서, 한인 사회는 공공성이나 헌신보다 경제적 영향력이나 개인적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주목받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다 주류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민족 공동체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탈리아계 캐나다인(Italian Canadian)이나 포르투갈계(Portuguese Canadian) 이민자들의 역사를 보라. 그들은 초기 이민 시절 대부분 건설 노동자나 석공으로 이 땅의 기초를 닦았다. 이들 공동체에서는 노동의 역사 자체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로 기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오히려 거친 손마디를 훈장처럼 여기며, 자신들이 캐나다의 도시를 직접 건설했다는 자부심을 공유한다. 그들의 커뮤니티 행사에는 세대와 직업의 차이를 넘어 노동 자체를 존중하는 문화가 비교적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직업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일 뿐,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님을 그들은 삶으로 증명한다.

유대인 공동체(Jewish Community)의 포용성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일부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구성원의 직업보다 공동체 기여와 교육,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강조된다. ‘티쿤 올람(Tikkun Olam, 세상을 고치고 개선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면 최고의 존경을 표한다. 학자든 상인이든 기술자든, 공동체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는 이가 리더로 추대된다. 그들은 개인의 배경을 따지기보다 ‘그가 우리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내놓았는가’를 묻는다. 이러한 개방성과 다양성 존중이 있었기에 그들은 척박한 디아스포라 환경 속에서도 높은 공동체 결속력을 유지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우리 한인 사회는 어떤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다들 알 만한 폐쇄적인 네트워크는 공고한 반면,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며 세금을 내고 자식들을 키워낸 ‘보통의 이민자’들은 공동체의 주류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이는 공동체 내부의 민주적 참여 문화를 약화시킬 수 있으며, 캐나다 사회가 지향하는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와도 긴장 관계를 보인다. 우리 이민사의 진짜 주인공은 화려한 명함을 가진 소수가 아니라, 낯선 땅의 거친 환경을 온몸으로 받아낸 수많은 평범한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캐나다 한국인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 구축을 통해 이러한 편견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박물관에는 성공한 기업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새벽을 가르며 일터로 나갔던 광부와 간호사, 편의점 계산대 뒤에서 수천 명의 이웃을 만났던 상인들의 삶이 똑같은 비중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들의 땀 냄새 나는 기록이 우리 공동체의 정통성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학벌’이나 ‘출신’이라는 낡은 잣대를 던져버릴 수 있다.

이민 사회의 리더십 또한 혁신되어야 한다. 리더를 선출할 때 과거의 배경이 아닌, 현재 그가 얼마나 다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지, 타민족과의 호혜적 교류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과거의 지위나 재력을 내세워 권위를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엄정한 경고가 필요하다. 권위적인 태도와 배타적 문화는 공동체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참여를 기대하는 차세대들을 한인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캐나다로 부모와 함께 이민을 온 어린 자녀들이 많은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캐나다 공교육 속에서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청소하는 분에게나 시장에게나 똑같이 “굿모닝”이라고 인사하며 그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품격을 보게 된다. 우리 어른들이 커뮤니티 모임에서 보여주는 무례함, 그리고 은근한 무시의 눈빛을 우리 아이들이 본다면 과연 무엇을 배우겠는가. 우리가 맨 먼저 물려줄 유산은 모든 인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뜻있는 사람들이 참여관찰을 중시하는 인류학적 연구자의 시각으로 우리 공동체를 본다면, 단순히 인구 통계학적 수치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에 흐르는 심리적 기제와 문화적 습속을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업과 학벌로 서로를 차별하는 것은 이민 사회 특유의 불안정성과 인정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타인의 배경을 굳이 캐물을 필요가 없다. 이민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온 것이지, 한국에서의 서열을 캐나다로 옮겨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제 편견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 되어야 한다. 한인 식당에서 서빙하는 청년이 미래의 장관이 될 수 있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장이 지역 사회의 가장 위대한 독지가가 될 수 있는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품격 있는 한인 사회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캐나다의 가치를 우리 커뮤니티의 내부로 들여와야 한다.

우리 모두는 편견과 차별을 당연시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장 정성스럽게 기록해야 한다. 이상한 편견이 만드는 슬픈 자화상을 지우고, 서로의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찬란한 풍경화를 그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을 먼저 밟은 선배 세대로서, 그리고 역사를 진지하게 기록하는 젊은 세대로서 우리 모두가 가진 소명이다. 미래의 한인 사회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가’로 평가받는 곳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