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서열문화, 태평양에 던지자
끼리끼리의 울타리를 넘을 때, 디아스포라는 강해진다.
- ‘형님, 동생’ 찾는 술잔 속에 이민사회의 미래는 없다. 수직적 위계질서의 성채를 허물자.
- 나이와 학번을 떼고 ‘능력’과 ‘비전’으로 만나는 주류 사회의 수평적 파트너십을 직시하자.
- 존경은 강요된 서열에서 나오지 않는다. 낡은 권위주의를 버려야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이민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민가방을 싸면서 한국에서의 무거웠던 직함과 사회적 관계망을 정리한다. 살면서 지녔던 다양한 직함은 그저 지난날의 이력일 뿐, 새로운 땅에서는 ‘이민자’라는 평등한 출발선에 서고자 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마주한 한인 사회의 풍경은 묘하게도 자신이 떠나온 한국의 가장 고루한 모습을 그대로, 아니 더 견고하게 답습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통성명을 하자마자 날아드는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고향은 어디세요?”, “어느 학교 몇 학번입니까?”. 이 세 가지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상대방을 내 아래에 둘 것인지, 위에 모실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서열 정리’의 의식이다. 확인이 끝나면 호칭은 순식간에 ‘형님’과 ‘동생’으로 정리되고, 그 순간부터 합리적인 토론은 사라진다. 형님이 말하면 동생은 따라야 하고, 선배가 이끄는 대로 후배는 잔을 채워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한국식 서열 문화의 망령’이라 부르고 싶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마땅히 바다에 던져버려야 했을 이 낡은 관습을, 우리는 기어이 이민 가방 깊숙한 곳에 챙겨와 이곳에서 다시 풀어놓았다.
이러한 연고주의(Cronyism)와 수직적 위계질서는 이민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독소다. 좁은 한인 사회에서 ‘OOO 동문회’, ‘OO 향우회’, ‘OO 전우회’ 등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아찔함을 느낀다. 물론,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 사람을 찾고 동문을 찾는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친목을 넘어 배타적인 ‘이너 서클(Inner Circle)’이 되고, 그 안에 끼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권력으로 작동할 때, 커뮤니티는 분열된다. 이민 사회가 발전하려면 ‘끼리끼리’의 문화를 넘어 ‘다양한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캐나다 내 타 민족들의 사례를 뼈저리게 참고해야 한다.
먼저 유대인 사회를 보자. 흔히 그들은 수평적 토론 문화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랍비나 커뮤니티의 원로가 존재하지만, 그들의 권위는 나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혜와 토론 능력에서 나온다. 유대인의 교육 방식인 ‘하브루타’는 나이 어린 학생이 스승이나 아버지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장려한다. 이러한 문화는 성인 사회로도 이어진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커뮤니티 회의에서 20대의 젊은 변호사가 60대의 자산가에게 “그 의견은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들은 ‘누가(Who)’ 말했느냐보다 ‘무엇(What)’을 말했느냐에 집중한다. 이러한 수평적 소통 구조 덕분에 유대인 사회는 세대 간 단절 없이 정보와 자본이 물 흐르듯 순환하며, 외부의 위협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한다.
캐나다 주류 사회, 특히 영국계와 프랑스계가 주축이 된 비즈니스 현장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인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은 ‘30년 넘게 만난 수많은 캐나다인 파트너들은 철저하게 ‘퍼스트 네임(First Name)’ 베이스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백발이 성성한 디렉터가 스물다섯 살 인턴에게 “Hey, John”이라 부르며 의견을 묻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랫사람을 하대하거나,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에게 존경(Respect)은 연장자 우대(Seniority)가 아니라 전문성(Professionalism)에 대한 인정이라는 것이다. 그 분은 이러한 합리적인 관계 설정이 있기에 조직은 유연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캐나다의 수많은 한인 단체들이 젊은 피 수혈에 실패하고 고령화되어가는 근본 원인이 바로 이 ‘서열 문화’에 있다. 캐나다에서 공교육을 받고 자란 1.5세와 2세들은 학교와 직장에서 수평적인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한인 단체는 숨 막히는 공간이다. 회의 시간에 자유롭게 의견을 냈다가 “어린 친구가 뭘 모른다”거나 “선배가 말하는데 어디서 말대꾸냐”는 식의 핀잔을 듣고 나면, 그들은 두 번 다시 그 단체를 찾지 않는다.
이민 1세대들은 커뮤니티에서 쉽게 ‘뼈아픈 장면’을 많이들 목격했다고 말한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 들어왔다가, ‘조직의 쓴맛’을 강요하는 일부 기성세대의 태도에 질려 떠나는 모습을 보았던 건 아닐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적인 정(情)은 좋은데, 한국적인 꼰대 문화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재 유출을 넘어 커뮤니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문화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공연전문가든 커뮤니티의 큰 행사를 연출할 때는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하게 된다. 그때 가장 경계했던 것이 ‘선후배 따지기’였다. 예술은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오는데, 학번을 따지고 기수를 따지는 순간 창의성은 질식한다. 한 원로디렉터는 자신이 만난 캐나다의 예술가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를 ‘동료(Colleague)’로 대우한다고 했다. 그랬기에 시너지가 폭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모범적으로 움직일 것 같은 커뮤니티 예술단체 내에서도 여전히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를 따지며 출연순서나 자리 배치 하나에도 신경전을 벌이는 소모적인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이제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식 서열 문화를 과감하게 던져버려야 한다.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의 부정적인 관습까지 고수할 이유는 없다.
첫째, 호칭부터 바꿔보자. ‘형님, 사장님, 회장님’ 대신 서로의 이름 뒤에 ‘님’이나 ‘씨’를 붙이거나,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방법이다. 호칭이 권위를 내려놓으면 마음의 벽이 낮아진다. 어떤 한인 스타트업 모임은 서로를 영어 닉네임으로 부르며 나이를 묻지 않는 규칙을 세웠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아이디어와 협업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둘째, ‘나이’가 아닌 ‘역할’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30대 한인회장이 선출된다면, 60대, 70대 교민들이 그를 조직의 리더로서 예우하고 따라줘야 한다. “내 아들뻘인데”라며 혀를 차는 순간, 그 조직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입으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경험 많은 시니어는 지시하는 ‘상관’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는 ‘고문(Advisor)’이나 ‘멘토’의 위치에 머무를 때 가장 아름답다.
셋째, 연고주의를 타파하고 ‘개방형 네트워크’를 지향해야 한다. 동문회나 향우회는 사적인 모임으로 국한하고, 공적인 한인 단체나 비즈니스 협회에서는 출신 학교와 고향을 묻는 것을 금기시해야 한다. 대신 “어떤 일을 하십니까?”,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를 물어야 한다. 과거의 인연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를 공유할 때 커뮤니티는 확장된다.
넷째,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소위 ‘방장’ 마음대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의 운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합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캐나다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민자는 ‘옮겨 심어진 나무’다. 뿌리는 한국에 두고 왔을지언정, 가지와 잎은 캐나다의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자라야 한다. 그런데 뿌리에 묻어온 흙(한국식 서열 문화)만을 고집하며 이곳의 토양(수평적 문화)을 거부한다면, 그 나무는 결국 고사하거나 기형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들과 딸이, 그리고 우리의 후세들이 한인 커뮤니티를 ‘권위적이고 답답한 곳’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역동적인 곳’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기득권을 쥔 세대부터 변해야 한다.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려 해야 한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배우려 해야 한다.
여러분이 토론토에 있다면,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온 권위의식, 체면치레, 서열주의 같은 무거운 짐들은 온타리오호수에 수장시켜도 좋다. 가벼운 몸과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오늘 저녁, 모임이 있다면 한번 실천해보자. 나이를 묻는 대신, 상대방의 꿈을 물어보자. 그 작은 변화가 우리 이민 사회를 춤추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캐나다인 의회(UCC) 홈페이지
“1,359,655명,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인식하는 캐나다인”이라고 이민자수를 알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2022년 2월 6일,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10개 주에서 온 30개 공동체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지하기 위해 함께 한 집회장면으로, 그들은 캐나다 정부에 우크라이나에 즉각적인 방어 무기를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캐나다인 의회(UCC, Ukrainian Canadian Congress)
1940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민족 공동체 중 하나(140만 명)로, 그들의 이익을 주도, 조정하고 대변해 왔으며, 더불어 캐나다의 사회, 경제,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라, 캐나다 연방 정부의 외교 및 이민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로비 그룹’이자 ‘커뮤니티 컨트롤 타워’이다. 그들은 캐나다 정부를 움직여 세계 최초로 조국의 독립을 승인받게 했고,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을 설계했으며, 현재는 전쟁 난민을 돕는 가장 체계적인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UCC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3가지 성과로는 다음 3가지를 꼽는다. ①"캐나다를 세계 최초의 승인국으로 만들다" (1991년), ②"캐나다의 국시(國是)를 바꾸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확립), ③"비극을 역사로 기록하다" (홀로도모르(Holodomor) 제노사이드 인정, 캐나다 커리큘럼에 반영)
특히 UCC 토론토 지부의 주요 업무로는 ① 대정부 로비 및 정책 제안, ② 전쟁 난민 정착 및 긴급 구호, ③ 차세대 리더 육성 및 교육 등이 있다. 특히 토론토 교육청(TDSB)과 협력하여 공립학교 내에서 우크라이나어 교육 과정을 운영하거나, 주말 학교를 통해 2세, 3세들에게 언어와 역사를 가르치는데, 단순히 말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서 캐나다 주류 사회(정치, 법조, 금융)로 진출하되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인재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