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유통기한, 그리고 사라지는 이민사
이민 역사의 유통기한이 지나고 있습니다. 1세대의 치열했던 삶이 쓰레기통이 아닌 역사로 남을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기록해야 합니다.
- 이민 1세대의 땀과 눈물은 단순한 ‘고생담’이 아니라,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유대인과 일본계 커뮤니티의 치열한 기록 정신을 반면교사로, 우리도 체계적인 아카이빙을 서둘러야 한다.
- 동포사회 열정만으로는 명확한 한계, 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사이버’라도 ‘이민박물관’ 구축이 시급.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유물은 결국 쓰레기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캐나다로 이주해 살면서, 이 단순하고도 잔인한 진리가 이민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지금, 우리의 이민 역사는 기억의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관(棺)속에 들어가는 것은 한 사람의 육신만이 아니다. 그가 겪어낸 낯선 땅에서의 처절한 생존기, 차별을 견뎌낸 인내, 자식들을 키우며 흘린 눈물의 서사(narrative)가 송두리째 매장되는 것이다. 1960년대, 70년대 독일로, 중동으로, 그리고 이곳 북미로 건너온 이민 1세대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빛바랜 앨범 몇 권과 자녀들이 기억하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뿐이다. 슬픈 일이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나 ‘야사(野史)’로 전락하거나, 끝내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는 과거 한-캐 수교 기념행사를 연출하고 동포사회의 사진들로 화보집을 펴내며, 우리네 이민사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눈물겨운 드라마였는지 확인한 바 있다. 광부와 간호사로, 혹은 맨주먹의 유학생으로 시작해 세탁소와 편의점의 카운터를 지키며 밤을 지새운 그 시간들은 단순히 ‘개인의 고생’으로 치부될 수 없다. 그것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마중물이자,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의 뿌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한 자산을 방치하고 있다.
타 커뮤니티를 보자.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인류 보편의 역사로 격상시키기 위해 집요하리만치 기록하고 증언을 채록했다. 캐나다 내 일본계 커뮤니티 역시 2차 대전 당시 강제 수용의 역사를 철저히 사료화하여 박물관을 짓고, 후세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무언의 교육을 시킨다. 그들에게 역사는 과거를 회상하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무기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성공,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 혹은 동포사회 부질없는 감투 싸움에 매몰되어 정작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증명할 ‘족보’를 만드는 일에는 소홀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구술 채록(Oral History)과 체계적인 자료 수집이다. 거창한 기념비나 동상을 세우는 것보다, 병상에 누워 계신 어르신의 녹취록 하나가 백 배 더 가치 있다. 그분들이 왜 고국을 떠났는지, 정착 초기 언어 장벽과 인종차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IMF 시절 고국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달러를 송금했는지, 그 생생한 육성을 디지털화해야 한다. 이것은 인류학적 연구 자료로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이 방대한 작업을 동포사회의 십시일반(十匙一飯)에만 기댈 수는 없다. 각 지역 한인회나 단체들은 재정적으로 열악하고,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사업의 연속성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록’은 끈기와 자본, 그리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본국 정부, 특히 재외동포청과 같은 관련 기관의 인식 전환과 적극적인 개입을 기대한다. K-팝이나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의 확산에 들이는 예산의 일부라도 재외동포의 이민사를 정리하는 데 투입하면 어떨까. 전 세계에 흩어진 750만 재외동포의 삶을 집대성할 ‘사이버 이민 박물관’을 생각한다.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넘어, 각국의 동포들이 자신의 기록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며, 후세들이 언제든 접속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한인 네트워크를 정서적으로 결속시키는 강력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장성한 자손들이 ‘아버지의 나라’와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모른다면, 그들이 가진 한국인의 피는 정체성의 혼란일 뿐 자긍심이 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 말을 이민 사회에 대입하면 더욱 섬뜩하다. “이민사를 기록하지 않는 동포 사회는 결국 주류 사회의 변방에서 소멸할 것이다.” 고단했지만 치열했던 1세대의 삶이 쓰레기통이 아닌 박물관으로, 망각이 아닌 역사로 남을 수 있도록 지금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사진설명) VEMU에서 열린 "타르투 대학 50주년"전시회 포스터.
“VEMU”는 토론토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박물관(Estonia Museum of Canada)으로, 타르투 칼리지에 위치하며, 에스토니아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공유하는 데 애쓰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캐나다 이민 역사는 19세기 말 소수의 개척자로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대규모 난민 유입을 통해 캐나다 사회의 주요 일원으로 자리 잡은 과정으로 요약되는데, 2026년 현재, 캐나다 내 에스토니아계 인구는 약 24,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 세계 에스토니아 디아스포라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이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