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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모자이크 속 한국인의 색깔

캐나다 모자이크 속 한인 사회의 고유한 색깔과 진정한 통합의 의미를 돌아본다.

  • 각기 다른 색이 어우러져 장엄한 예술이 되는 모자이크, 그 안에서 우리의 빛깔은?
  • 유대인의 역사 의식, 이탈리아인의 문화적 자부심이 캐나다의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 단순한 동화를 넘어 고유한 정체성으로 기여하는 ‘성숙한 통합’, 그것이 진정한 시민의 격.

사람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캐나다 이민자로서 언제쯤이면 비로소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민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경험치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우리 공동체 전체를 조망해보면, 과연 우리가 캐나다라는 거대한 모자이크 안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을 내며 건강하게 통합되고 있는지 깊은 의구심이 든다.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은 흔히 ‘모자이크(Mosaic)’로 비유된다.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채택해 문화적 다양성의 보존을 장려해 왔으며, 이는 각 공동체가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조화에 기여하는 이상으로 설명되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지’와 ‘조화’의 균형이다.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은 ‘동화(Assimilation)’일 뿐 ‘통합’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색깔만 고집하며 주변과 섞이지 않는 것은 ‘고립’이다. 우리 한인 사회는 지금 이 경계 어디쯤 서 있는가. 혹시 겉모습은 캐나다 시민이지만 속은 여전히 한국식 서열 문화와 명예욕, 그리고 좁은 우물 안의 경쟁에 함몰되어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타 민족 공동체가 캐나다 모자이크 안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색깔을 선명하게 유지하며 기여 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유대인 공동체(Jewish Community)는 그 정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고유한 신앙을 캐나다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관용’으로 승화시켰다.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교육 기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인권 교육과 공공 기억의 영역으로 확장해 왔으며, 이는 캐나다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들이 내는 색깔은 ‘기억과 교육’이다. 그들은 역사 보존과 교육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캐나다 사회의 인권과 관용에 대한 논의와 연결해 왔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공동체의 색깔은 ‘생활 문화의 미학’이다. 토론토의 ‘리틀 이탈리아’나 ‘코르소 이탈리아’는 단순히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아니다. 그곳은 이탈리아계 캐나다인들이 오랫동안 가꿔 온 생활 문화와 공동체 전통을 도시 공간 속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 거점이다. 그들은 다국어 매체와 지역 사회 기관을 통해 언어와 문화를 계승하는 동시에 더 넓은 사회와의 소통을 이어왔다. 그들이 내는 색깔은 ‘활력과 연대’다. 그들은 자신들의 축제를 도시 전체의 축제로 만듦으로써 캐나다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Ukrainian Canadian)들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그들은 모국이 고난을 겪을 때마다 캐나다 내에서 강력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모국의 문화를 지켜왔다. 캐나다 곳곳의 문화센터, 민속예술 단체, 기념관 등은 그들이 오랜 세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 온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들은 정치·공공정책·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색깔은 ‘계승과 투쟁’이다.

물론 어떤 공동체도 완벽하지는 않다. 유대인, 이탈리아인, 우크라이나인 공동체 역시 세대 갈등과 정체성 변화, 동화 압력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사회적 기여와 연결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의 색깔은 무엇인가. 우리는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으며, 경제적으로 빠르게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모자이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캐나다라는 전체 그림에 기여하는 ‘문화적·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K-팝과 K-푸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공동체 차원의 사회적 기여나 시민적 참여와는 다른 차원의 성과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세대 간, 지역 간, 혹은 이민 시기별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과 단절 역시 우리가 성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진정한 통합은 우리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캐나다 사회의 공익과 연결할 때 완성된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고난을 겪으며 이 땅에 뿌리를 내렸는지 기록하는 작업은 단순히 우리끼리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캐나다라는 다문화 역사책에 ‘한국인’이라는 챕터를 반듯하게 써넣는 행위다. ‘캐나다 한국인 이민사를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을 캐나다의 젊은 한인 인재들이 구축하고자 애쓰는 것도 바로 이런 정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한다. 우리의 기록이 캐나다 국립 기록관의 자료와 호응하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이 나라의 건설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배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색깔은 모자이크 속에서 영원히 빛날 수 있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현실은 어떤가.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를 승화시키는 거시적인 안목보다는, 당장 눈앞의 행사와 이익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심 없는 봉사 대신 다른 가치를 좇는 사람들의 모습은 캐나다의 합리적 시민 의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행태는 차세대들을 공동체로부터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주류 사회가 우리를 ‘성숙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내는 색깔이 갈등과 무례함이라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모자이크의 중요한 조각으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커뮤니티의 차세대들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중시해 온 근면성과 교육에 대한 열의, 그리고 캐나다 사회의 합리주의적 가치관을 함께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 많은 차세대 한인들은 한국 문화와 캐나다 사회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1세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갈등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한국적 미덕인 ‘예(禮)’와 ‘효(孝)’,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캐나다의 가치와 결합하여 새로운 시민 문화를 창조하는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버려야 한다.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넘어, 타 민족 공동체와 연대하고 주류 사회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인권을 위해 싸우고 이탈리아인들이 도시의 미관을 가꾸었듯, 우리도 한국인만의 성실함과 예술적 감각,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캐나다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통합의 리더십’이며, 사심 없이 헌신하는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이다.

캐나다 모자이크는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지금도 그려지고 있는 진행형 예술이다. 그 화폭 위에서 한국인의 조각은 어떤 모양으로 남을 것인가. 나는 우리 공동체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 품격 있는 예절과 역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모일 때 우리의 색깔은 비로소 선명해지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모자이크의 중심 조각이 될 충분한 역량이 있다. 다만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외부의 장벽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낡은 관습과 편견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차세대들이 살아갈 미래의 캐나다가 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도록, 우리 커뮤니티가 먼저 정갈하고 명료한 한국인의 빛깔을 회복하자. 물질적인 성공을 넘어 사회적 기여로, 폐쇄적인 단결을 넘어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자. 그때 비로소 우리는 ‘캐나다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거대한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디아스포라의 완성이 아닐까.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