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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잃은 한인 사회, 품격을 높이자

고성 대신 경청으로—한인 사회의 품격은 말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 고성과 삿대질이 지배하는 공청회, 우리가 스스로 깎아내린 한인 공동체의 현주소다.
  • 품격 있는 토론과 상호 존중의 에티켓만이 주류 사회의 진정한 파트너로 서는 열쇠다.
  • 타민족의 성숙한 회의 문화를 거울삼아, 대화의 격을 높이는 혁신이 시급하다.

당신은 언제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실감하는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한국식 ‘떼법’ 문화에 대한 갈증은 어떻게 해소했는가? 쉽게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얻어지는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울 것은 지식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예의’라는 사실이다.

한인커뮤니티의 공청회나 주요 단체의 이사회 현장은 종종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정해진 순서와 발언권을 무시하는 것은 예사고,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성을 지르며 끼어드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다. 논리적인 비판 대신 “너 몇 살이야?”, “네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같은 인신공격성 막말이 난무한다. 많은 돌발상황을 겪어본 사람들도, 일부 모임에서 벌어지는 상식 밖의 무례함은 흉내 내기 힘든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태도는 의사결정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차세대들과 주류 사회의 시선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든다.

우리는 캐나다라는 다문화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다. 이 오케스트라에서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타민족 공동체들이 어떤 에티켓을 지키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캐나다 주류 사회의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을 보라. 그들은 ‘로버트 의사 진행 규칙(Robert's Rules of Order)’을 성경처럼 받든다. 아무리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도 발언권은 의장의 허락하에 주어지며, 발언자는 상대방이 아닌 의장을 향해 정중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상대의 주장이 터무니없어도 끝까지 듣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다. 이는 단순히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유대인 공동체의 토론 문화는 더욱 치열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그들은 ‘하브루타’라는 전통을 바탕으로 1대 1 혹은 집단 토론에 능숙하다.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것이 결코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토론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존중 기반의 쟁론’이 있었기에 그들은 분열되지 않고 강력한 응집력을 유지하며 캐나다 주류 사회의 핵심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계 캐나다인(Japanese Canadian)들의 회의 방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들은 대외적인 행사나 공적 회의에서 공동체의 ‘얼굴’을 훼손하는 행위를 극도로 경계한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는 회의 전 ‘네마와시(뿌리 다지기)’라 불리는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치거나, 회의 석상에서는 절제된 언어로 정중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고성을 지르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제미의 표현은 주류 사회 정치인들에게 “믿고 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집단”이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자양분이 된다.

반면, 우리 한인 사회의 무례한 토론 문화는 주류 사회와의 소통 창구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역구 의원이나 시청 관계자가 참석한 공청회에서 한인들끼리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이 과연 우리의 요구 사항을 진지하게 경청하겠는가.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세련된 시민’이 아니라 ‘통제 불능의 이익 집단’일 뿐이다.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는 한인 사회 내부의 고질적인 분쟁과 무례한 항의 방식 때문에 주정부의 지원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예의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실질적인 이익을 깎아먹는 경제적 손실이기도 하다.

품격은 돈이나 화려한 경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에티켓’에서 나온다. 젊은 한인 인재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이버 박물관’에는 우리 이민사의 어두운 단면인 ‘무례함의 기록’들도 가감 없이 수집되어, 성공의 역사뿐만 아니라, 공적 석상에서 보여준 몰상식한 행태들도 경계의 본보기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이 진짜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한인 사회는 ‘회의 문화의 선진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표준화된 의사 진행 규칙을 도입하고, 이를 어기는 이들에게는 엄격하게 제재를 가해는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회의 진행 촉진)’ 교육 등을 실시하는 것도 훌륭한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목소리 크기가 권력이 되는 시대가 끝나고, 논리의 깊이와 태도의 품격이 권위가 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장성한 우리의 자녀들이 한인 사회의 행사에 참여했을 때, 부모 세대의 정연한 토론과 서로를 배려하는 매너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세대 교체도 가능해진다.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이들이 먼저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를 선택할 때 공동체의 공기는 맑아지지 않겠는가.

이민 사회의 품격은 우리가 가진 빌딩의 높이가 아니라,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기관이나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제는 통계적인 수치를 넘어, 우리 공동체의 내부 문화와 시민 의식의 성장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예의 없는 한국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일궈낸 경제적 성공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 품격 있는 한인 사회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오늘 당장 내가 마주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그 작은 예의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캐나다라는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고귀한 유산이다. 질책은 매섭게 하되, 우리 공동체가 대화의 기술을 익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기를 많은 한국인들이 바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