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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타이머와 뉴커머, 공존의 지혜

'라떼는 말이야'식의 훈계는 접읍시다. 올드타이머의 하드웨어와 뉴커머의 소프트웨어가 만날 때 갈등은 시너지가 됩니다.

  • '라떼는 말이야'의 훈계는 접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공존의 식탁’을 차리자.
  • 1970년대의 생존 본능과 2020년대의 합리성이 만나야 이민사의 물길이 트여.
  • 올드타이머가 깔아놓은 하드웨어에 뉴커머의 소프트웨어를 이식하는 것이 진정한 계승.

이민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하나 있다. 흔히들 ‘이민자의 시계는 떠나온 그 시점에 멈춰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에 파독 광부나 간호사를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올드타이머(Old-timer)의 시계는, 그 시절 한국의 ‘헝그리 정신’과 ‘새마을 운동’ 식의 단결력에 맞춰져 있다. 반면, 2000년대 이후, 혹은 최근에 유학이나 취업을 통해 들어온 뉴커머(Newcomer)의 시계는, 고도로 발달한 한국의 디지털 문명과 합리적인 개인주의, 그리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현재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이 두 개의 시계가 한 공간에서 만날 때, 태엽이 맞물려 돌아가기보다는 서로의 톱니바퀴가 부딪쳐 삐걱거리는 파열음을 내곤 한다.

어찌 보면 우리들 모두 올드타이머와 뉴커머 사이에 낀 ‘허리 세대’이자,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는 관찰자로서 이 갈등을 목격해왔다. 한인회 행사나 동포 모임 어디서라도 공기가 묘하게 갈라진다. 1세 선배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끈기가 없고, 커뮤니티에 봉사할 줄 모른다"며 혀를 찬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내가 이민 왔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 맨주먹으로 세탁소와 편의점을 일구며 겪은 무용담으로 끝난다. 반면, 젊은 뉴커머들은 그런 선배들을 ‘꼰대’라 부르며 거리를 둔다. 그들에게 올드타이머들의 방식은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이며, 지나치게 감정적인 ‘과거의 유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름’의 문제이자, 이민 시기에 따른 ‘생존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올드타이머에게 생존은 ‘단결’과 ‘희생’이었다. 뭉쳐야 살았고, 내 것을 내어주며 서로를 지탱해야 했다. 그러나 뉴커머에게 생존은 ‘정보’와 ‘능력’이다. 그들은 이미 영어가 능숙하고, 한국에서의 스펙도 화려하며, 굳이 한인 사회에 기대지 않아도 주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인 사회는 두 개의 섬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캐나다 내 타민족의 지혜를 빌려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 역시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심의 보수적인 올드타이머와, 세속적이고 현대적인 뉴커머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훈계’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올드타이머들은 자신들이 축적한 자본과 인맥(Networking)을 뉴커머들의 스타트업이나 법률, 의료 진출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나 때는 이렇게 고생했다"고 가르치는 대신, "네가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로 돌아와 선배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 멘토링 프로그램(Mentorship)을 통해 세대 간의 단절을 ‘지식의 전수’로 바꾼 것이다.

중국계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말 철도 노동자로 온 초기 이민자 그룹과, 1990년대 홍콩 반환을 앞두고 건너온 부유층, 그리고 최근 본토에서 온 유학생 그룹은 언어도, 정치적 성향도, 배경도 판이하다. 하지만 그들은 ‘비즈니스’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연대한다. 올드타이머가 소유한 차이나타운의 건물과 전통적인 상인 협회(Benevolent Association)라는 하드웨어에, 뉴커머들의 자본력과 최신 경영 기법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했다.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밴쿠버와 토론토의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고 정치력을 행사하는 데 힘을 합쳤다.

우리 한인 사회는 어떠한가. 1세대가 애써 일궈놓은 각종 단체들은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아 고령화되고 있다. 뉴커머들은 그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단톡방 속에 숨어 정보를 교환한다. 이 단절을 잇기 위해서는 올드타이머의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솔직히 인정하자. 올드 타이머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2026년의 캐나다에서는 낡은 나침반일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은 운전대를 잡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뉴커머가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연료를 채워주고, 오래전에 닦아놓은 도로를 내어주는 ‘조력자’여야 한다.

뉴커머들 역시 올드타이머를 ‘말 안 통하는 노인’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겪은 차별과 고난의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낡은 장롱 속에 있는 그들의 투박한 지혜와 인내심은, 스마트폰 검색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인생의 정답지일 때가 많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세탁소 다림판 앞에서 30년을 버틴 그 ‘성실함’과 ‘책임감’은 어떤 AI도 대체할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다.

여기서 제안한다. ‘라떼는 말이야’ 식의 일방적인 강연회나 기념식 대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환의 장’을 만들자. 올드타이머는 뉴커머들에게 이민 생활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지혜와 밥 한 끼를 따뜻하게 대접하고, 뉴커머는 올드타이머들에게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의 문법과 최신 트렌드를 알려주는 상호 멘토링이 필요하다. 1세대가 세운 건물에서 2세, 3세가 스타트업을 하고, 그 수익으로 다시 1세대의 노후를 돌보는 선순환 구조. 이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공존의 식탁’이다.

이민자는 누구나 외롭다. 고국을 떠나왔다는 원죄 같은 외로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먼저 왔다는 이유로 텃세를 부리거나 나중 왔다는 이유로 서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올드타이머의 시계와 뉴커머의 시계는 가리키는 시간은 다를지언정, ‘더 나은 삶’을 향해 간다는 방향은 같다. 서로의 시계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경험이 합쳐져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역동적인 한인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이민사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미학’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갈등은 시너지가 된다. 1970년의 땀방울과 2026년의 아이디어가 만날 때, 캐나다 한인 사회는 비로소 과거에 머무른 이방인이 아니라 미래를 주도하는 주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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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에 설립된 UJA(United Jewish Appeal) Federation of Greater Toronto는 토론토 유대인 커뮤니티의 자선 모금과 배분을 총괄하는 북미 최대 규모의 단체다. 사진은 UJA Federation of Greater Toronto의 반(反)반유대주의 캠페인 포스터로, “반유대주의와 맞서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것은 단지 유대인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 전체의 문제‘라는 캠페인이다. UJA는 더 강한 캐나다를 위한 동맹에 투자했고, 231개 선거구에 걸쳐 10,000명 비유대인 동맹으로 성장했으며, 반유대주의 퇴치를 국가적 우선순위로 삼아 더 강하고 안전한 캐나다를 만들고 있다. 토론토 한인커뮤니티가 참고할 수 있는 효율적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