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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과 거주국, 짝사랑 아닌 호혜로

재외동포는 더 이상 수혜자가 아니라, 한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당당한 전략적 동반자다.

  • 일방적인 수혜를 바라는 ‘모국 바라기’에서 벗어나, 당당한 동반자로서의 호혜를 논해야 한다.
  • 캐나다의 풍요로운 자원과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를 결합하는 ‘민간 외교관’의 소명.
  • 기록된 호혜의 역사는 모국과 거주국 사이 가교를 놓고, 우리 공동체의 진정한 품격을 완성.

제 나라를 떠나와 오랜 기간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살아온 올드타이머들은 장성한 자식들을 보면 안도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맺어온 모국과의 관계를 돌아볼 때면 여전히 ‘짝사랑’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회의에 빠진다. 이제 세계의 한국인들은 이야기한다. 일방적인 지원을 바라는 ‘모국 바라기’나, 모국이 필요할 때만 호출하는 ‘일방적 요구’에서 벗어나 상호 이익이 되는 ‘호혜적 교류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우리는 흔히 재외동포를 조국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혜자’로만 인식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미주 한인 사회와 캐나다 동포 사회를 두루 거치며 목격한 것은, 한인들이 이미 거주국의 다양한 인프라와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민간 외교관’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영향력과 네트워크를 물리적 국경 너머로 확장하는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리더십은 여전히 제한적인 정부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일부 단체는 한국 정치의 영향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도 한다. 커뮤니티의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파행과 예의 없는 비방전은, 우리가 모국과 맺어야 할 당당한 호혜의 관계를 스스로 깎아먹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다 내 다른 민족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조국과 어떤 방식으로 호혜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유대계 연합조직(Jewish Federations)의 사례는 가장 강력한 본보기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일방적인 지원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캐나다의 경제계·학계·정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대계 인사들이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을 캐나다 시장과 연결하고, 캐나다 사회에서 형성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권익을 대변한다. 그들은 모국을 짝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들이 구축한 ‘호혜의 역사’는 고스란히 아카이브로 남겨져 다음 세대에게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토대가 된다.

이탈리아계 캐나다인(Italian Canadian)들 역시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식문화·디자인·패션 등 문화적 자산을 캐나다의 유통망과 결합해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초기 이민자들이 건설 노동자로 시작해 이 땅의 기초를 닦았다면, 그 후손들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자산을 캐나다의 자본과 결합해 민간 외교의 모범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국에 무언가를 해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 대신 모국의 가치를 캐나다에서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함께 강화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호혜적 교류’의 실체다.

중국계 공동체의 실용주의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부 중국계 기업인들은 캐나다의 자원과 중국 시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대학과 병원 등 공공기관에 활발히 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들이 모국과 맺는 관계는 철저하게 ‘상호 이익’에 기반한다. 이민 1세대의 정착의 역사와 주류 사회에 기여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중국계 이민 박물관과 문화기관은, 모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그들이 수행한 브릿지 역할이 결코 일방적인 수혜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물이다.

반면, 우리 한인 사회는 어떠한가. ‘K-컬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우리는 그 역동적인 문화를 캐나다의 자원이나 기술과 결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키는 데 서툴기만 하다. 여전히 ‘애국심’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며 모국에 헌신하거나, 반대로 모국이 우리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캐나다의 청정에너지 기술, 인공지능 인프라, 광활한 천연자원을 한국의 제조 기술 및 문화적 창의성과 결합하는 주체가 우리 동포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거주자가 아니라, 두 나라의 강점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디아스포라’가 되어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캐나다에 정착한 한국인 중에서 뜻있는 분들이 2003년 한-캐 수교 40년이 되는 해부터 한국인 이민사 자료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민간차원에서 영상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기념사진집도 발간되고, 주요 도시에서 사진전도 개최했다. 그런 의미있는 일을 잘 치러본 경험이 쌓여있으니, ‘캐나다 한국인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 구축도 보람된 일이라는 것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나열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어떻게 캐나다의 기술을 한국에 전하고, 한국의 문화를 캐나다 주류 사회에 이식했는지, 그 호혜적인 교류의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모아야 한다. 기록되지 않은 교류는 짝사랑으로 끝나지만, 기록된 교류는 두 나라가 서로를 존경하게 만드는 역사적 근거가 된다.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는 한국 정부에도 제언한다. 이제 동포들을 ‘관리의 대상’이나 ‘선거용 표’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포 사회를 한국의 경제 영토를 넓히는 ‘전진기지’로 대우하고, 그들이 현지에서 축적한 살아있는 데이터를 정책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동포들이 현지의 자원과 한국의 문화를 결합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플랫폼을 지원해야 한다. 인류학적 참여관찰을 통해 동포 사회의 질적 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이민자의 자녀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조국이 단순히 부유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들의 부모가 캐나다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조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목격할 때, 그들의 자부심은 완성된다. 우리가 커뮤니티 내부의 비민주적인 갈등을 멈추고, 예의를 갖춘 합리적인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끄러운 리더십 아래서는 품격 있는 호혜가 꽃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민은 도피가 아니라 확장이다. 올드타이머의 경험과 뉴커머의 세련된 기술이 만나 조국과 거주국을 잇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이 칼럼은 앞으로도 우리 내부의 낡은 관습을 질책하고, 호혜적 교류를 위한 새로운 제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국과 거주국은 서로를 짝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있어 더 빛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사이버 박물관에 기록될 우리의 당당한 발자취가 양국 교류사에 가장 긍정적인 평가로 남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질책은 매섭게 하되, 우리 공동체가 지닌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만은 결코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초심이자,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로서의 마지막 소명 아니겠는가.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