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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성공보다 빛나는 사회적 기여

가장 높은 성공은 성취가 아니라, 사회에 무엇을 돌려주느냐에 있다.

  • 부의 축적을 넘어선 사회적 헌신은 디아스포라가 도달해야 할 진정한 성공의 종착지다.
  • 타국 공동체의 기부 문화를 통해 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동체적 자부심의 상관관계 집중.
  • 물질적 풍요를 넘어 품격 있는 유산을 남기는 일은 후대를 위한 가장 고귀한 가르침이다.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이 땅에 도착했을 때 모든 이들은 이렇게 다짐했을 것이다. ‘이 낯선 땅이 나의 아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되고, 나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실천하는 제2의 고향이 되기를…’하고. 그동안 캐나다의 공교육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묻지 않고,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쳤고, 아이들은 어느덧 장성해 캐나다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자, 우리는 지금쯤 이민 1세대가 추구해온 ‘성공’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때가 왔음을 절감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이민자의 지표를 경제적 성취에서 찾는다. 토론토나 밴쿠버의 부촌에 얼마나 큰 집을 샀는지, 어떤 고급 차를 타는지, 자녀를 의사나 변호사로 키웠는지가 대화의 주된 소재가 되곤 한다. 물론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일궈낸 경제적 기반은 숭고한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축적’ 이후의 삶에 대한 철학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는 치열했지만, 번 돈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변두리 담론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는 한인 사회를 ‘섬’으로 만든다. 우리끼리 모여 부를 과시하고 서열을 매기는 동안, 정작 우리가 뿌리 내리고 사는 캐나다 주류 사회와의 접점은 헐거워진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졌을지 몰라도, 사회적 영향력이나 존경의 대상으로서의 ‘품격’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갇힌 폐쇄적인 공동체로 비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다 내 다른 민족 공동체가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사례를 겸허히 들여다 봐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대인 공동체다. 그들은 ‘체다카(Tzedakah)’라고 불리는 정의로운 기부 전통을 이민 사회에서도 철저히 실천한다. 토론토의 주요 병원이나 대학 도서관, 박물관의 기부자 명단 최상단에는 어김없이 유대인 성씨가 등장한다. 그들은 단순히 돈이 많아서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안녕이 곧 개인의 안전이라는 확신 아래, 부의 일부를 사회적 자산으로 환원하는 것을 시민의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이러한 기부 문화는 그들이 캐나다 정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덕적 근거가 된다.

중국계 캐나다인들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이나 대만, 본토에서 건너온 부유한 이민자들은 캐나다의 의료 및 교육 시설에 막대한 자금을 쾌척해 왔다. 밴쿠버의 대형 병원 병동이나 대학 건물이 중국계 기부자의 이름으로 명명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들은 기부를 통해 자신들이 이 땅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행보는 주류 사회로 하여금 그들을 ‘성공한 이방인’이 아닌 ‘존경받는 시민’으로 대우하게 만든다.

다행히 우리 한인 사회 내부에서도 변화의 물결은 감지된다. 이름 없이 조용히 장학 재단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원로들, 수익의 일부를 떼어 지역 사회의 노숙자나 취약 계층을 돕는 소상공인들, 그리고 자신의 전문 지식을 타 민족 공동체와 나누는 차세대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한-캐 수교 60주년을 보내면서, 우리의 이민사 곳곳에 숨겨진 이러한 ‘빛나는 헌신’들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진정으로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화려한 직함을 가진 단체장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를 이웃과 나누는 ‘조용한 기부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만은 아님을 안다. 이 사회가 제공한 기회와 공동체의 지지에 대한 고마움을 기부와 봉사로 갚는 것이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야말로 한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외교이자 홍보다.

경제적 성공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사회적 기여는 ‘존엄’을 위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남겼는가보다, 부모가 이 사회에서 어떤 평판을 얻었으며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캐나다 공교육을 통해 ‘시민 의식’을 체득한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 세대의 물질지상주의는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일 뿐이다. 반면, 부모가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기부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가장 위대한 교육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캐나다 한국인 이민사를 반듯하게 기록하는 사이버 박물관’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에 동참했으면 한다. 그 사이버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전시실은 ‘성공한 기업인’의 방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한 한국인’의 방이 되어야 한다. 누가 얼마나 벌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누가 우리 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발전을 위해 헌신했는지는 기록을 통해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이 쌓일 때, 우리 한인 사회의 역사는 비로소 ‘품격 있는 이민사’로 완성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내부에서 외부로, ‘나’에서 ‘우리’로 돌려야 한다. 한인 단체들 역시 회원들끼리의 단순한 친목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캐나다 주류 사회에 기여하고 타 민족과 연대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기부 시스템을 구축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앞장서야 한다. 돈이 권력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기여가 권위가 되는 사회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가야 한다.

이민 1세대의 고생은 숭고했다. 그 고생의 결과로 얻은 경제적 여유를 이제는 가치 있는 곳에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질은 유한하지만, 그 물질로 일궈낸 사회적 기여와 명예는 무한하다. 캐나다라는 넓은 대지 위에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은 단순히 ‘돈’이라는 씨앗이 아니라, ‘존경’이라는 나무다.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리 후대들이 당당하게 한국인의 긍지를 느끼며 자라나길 소망한다.

경제적 성공보다 빛나는 사회적 기여,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공동체가 생존을 넘어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사재를 털어 도서관을 짓고, 시간을 내어 병원에서 봉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한인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캐나다라는 다문화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 길에 서 있는 모든 ‘작지만 위대한 리더’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우리 젊은 인재들과 함께 기록자로서 그들의 발자취를 정성껏 기록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