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eul Logo
...

보이지 않는 헌신을 엮어 세상의 무게를 견디는 예술, 작가 김경원의 세계

보이지 않는 돌봄의 실로 삶과 문화의 경계를 엮어내는 작가. 경찰에서 예술가, 어머니에서 기록자로 이어진 자신의 여정을 통해 연결과 치유의 아름다움을 직조한다.

  • 이십여 년간 법을 수호하던 강인한 손으로 네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일상을 빚어내는 작가.
  • 지워지기 쉬운 '돌봄'이라는 숭고한 노동을 눈에 보이는 예술의 형상으로 길어 올리는 예술가.
  • 한국과 캐나다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피어난 인연의 실타래를 가장 따스한 온기로 엮어내다.

캐나다 토론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김경원(Sophia Kyungwon Kim)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가장 먼저 따뜻한 ‘연결’의 감각에 매료된다. 그녀의 작업이 유독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미학적인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가 예술의 길로 들어서기 전 걸어왔던 아주 특별한 이력이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2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규율과 법이 지배하는 냉철한 세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재료인 실과 천을 이용해 ‘돌봄’과 ‘모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감동을 준다. 이러한 독특한 인생의 여정은 그녀의 작품에 그 어떤 작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한 진정성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그녀의 작업은 평면적인 회화에서 입체적인 조형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로서의 철학뿐만 아니라, 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삶이 녹아 있는 아주 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이유가 숨어 있다. 아이들을 돌보며 긴 시간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 그녀는 일상의 틈새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혹은 식사를 준비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캔버스 앞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과 천을 매개로 삼은 것이다. 평면이 생각의 기록이라면, 입체작업은 작가가 실제로 몸을 움직여 겪어낸 ‘노동’의 기록. 부드러운 천이 솜으로 채워져 부피를 가지고, 그것들이 모여 공간을 가득 채우는 과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돌봄의 손길이 쌓여 한 가정을 튼튼하게 지탱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녀의 대표작인 ‘Weaving the Unseen(보이지 않는 것을 엮다)’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돌봄의 가치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작업은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드로잉들을 수백 개의 헝겊 인형으로 형상화하여 서로를 기대고 보듬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이 구조는 숲속 나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와 균사체(mycelial networks)를 통해 서로 영양분을 나누고 소통하는 방식에 비유된다. 우리의 삶 역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 돌봄, 그리고 끊임없는 연결로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시리즈는 돌봄을 단순히 감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는 ‘필수적 인프라’이자 ‘숭고한 노동’으로 재정의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 앞에서, 1910년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가 러시아 수집가 세르게이 슈킨의 의뢰로 제작한 대형 장식 패널화인 <춤(Dance)>이 떠오른다고 했다. 강렬한 붉은색의 다섯 나체가 초록색 언덕과 파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잡고 원무를 추는 모습을 담아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를 표현한 그 작품과 결이 다르긴 했지만,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런 작가에게 어울리는 닉네임을 붙여준다면 ‘생명을 깁는 마음의 정원사’라고 부르고 싶다. 거친 세상에서 상처받은 마음들을 원초적 에너지인 ‘예술이라는 바느질’로 꼼꼼히 꿰매고, 그 위에 돌봄이라는 따스한 햇살을 비추어 보이지 않는 희생의 꽃을 피워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헝겊 몸체들을 보고 있으면, 지친 현대인의 영혼이 작가의 평화로운 정원에서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김경원 작가의 작품에는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로서의 ‘디아스포라’적 정서가 깊게 투영되어 있다.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광목(unbleached cotton)’은 한국인의 뿌리인 ‘백의민족’과 아이가 태어나 처음 입는 ‘배냇저고리’를 상징한다. 반면, 작품 곳곳에 섞인 붉은색 격자무늬 천은 캐나다의 문화를 상징하며, 한국적인 배경을 가진 엄마와 캐나다의 언어와 문화를 흡수하며 자라나는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두 가지 이질적인 천을 꿰매어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행위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사랑으로 묶여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캐나다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만의 고유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로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주는 기록’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하지만 그 일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깨닫기를 바란다. 자신의 예술이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되살리고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인연을 더 단단하게 만들게 되기를 그녀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논할 때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두 작가 모두 실과 선을 주된 매체로 사용하여 공간을 압도하는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도 존재한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업이 죽음, 공포, 그리고 거대하고 혼돈스러운 운명의 그물을 표현하며 강렬한 심리적 압박을 준다면, 소피아 경원 킴의 작업은 훨씬 더 구조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따뜻한 치유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또, 시오타의 실이 집착과 고통을 상징한다면, 김경원의 실은 이해, 화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빛을 향해 있다.

또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은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응노 화백을 떠올릴 것 같다고 했다. 그가 1980년대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인 <군상>시리즈는 1979년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그가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소재로, 처음에는 군무(群舞)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화면 속에 다른 대상 없이 인간만 그렸기 때문에 <인간>시리즈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반복되는 인간의 형상과 그 형상이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에너지는 그녀의 ‘Weaving the Unseen’ 시리즈에 큰 영감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럼으로써 수백 개의 인형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설치 작업은,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연결될 때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려는 의지의 산물임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소피아 경원 킴의 작품은 그녀가 석사 학위를 마친 OCAD의 이그나이트 갤러리(Ignite Gallery)를 비롯하여 토론토의 여러 전시 공간에서 선보여 왔으며, 예술적 가치를 알아본 캐나다 현지의 여러 개인 컬렉터들에게 소중히 소장되어 있다. 최근에는 부드러운 직조 작업뿐만 아니라 이를 브론즈 조각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통해 작품의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작픔을 통해, 소피아 경원 킴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 당신 곁에 있는 평범한 일상이, 실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정성과 돌봄으로 엮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녀가 쉼 없이 움직이는 손길로 만들어낸 이 인연의 그물망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아,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따뜻한 위안을 전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