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조각들로 일궈낸 아름다운 화해, 작가 권채리가 보여주는 '기억의 재구성'
찢기고 흩어진 기억을 다시 묶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이민과 치유의 경험을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하는 작가.
- 갑작스러운 홍수가 휩쓸고 간 스튜디오의 파편들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실로 꿰매다.
- 상처 입은 기억을 층층이 쌓고 다시 조립하며 삶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가는 ‘과정’의 예술가
- 작가는 토론토의 빛과 한국적 정서를 조화롭게 직조해 내는 '기억의 치유술사'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시련은 때로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권채리(Che Ree Kwon)작가에게 그 시련은 문자 그대로 '물처럼' 들이닥쳤다. 지하 스튜디오를 집어삼킨 갑작스런 물난리는 공들여 그린 그의 작품들과 아끼던 화구들을 훼손시켰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평면의 캔버스 너머 광활한 입체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 권채리는 삶의 파편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우 특별하고도 다정한 예술가라는 평을 듣게 된다. 그야말로 의미있는 전환점에 서있었다.
권채리는 한국의 명문대 회화과 출신의 정통파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캐나다 이주 전에 한국에서 전문큐레이터로 활동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을 조율하며 공간을 해석하던 ‘큐레이터의 시선’은, 이제 창작자가 된 그녀가 작품을 대할 때 객관적이면서도 구조적인 깊이를 더해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이 공간 속에서 관객과 어떻게 만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그녀의 감각은 큐레이터 출신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개성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최근 그녀의 작업 패턴이 왜 평면에서 입체로 바뀌었는가 하는 점인데, 앞서 말한 '홍수'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물에 젖어 일그러진 캔버스들을 보며 작가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지만, 새로운 생명력에 주목했고, 평면적인 그림은 일종의 변할 수 없는 ‘결과’라면, 천을 깁고 나무 패널을 다시 조립하는 작업은 삶을 회복하는 ‘과정’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넘어, 상처 입은 물체들을 만지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물리적인 노동의 과정이 더해지면서 그녀의 예술은 평면을 탈피해 우리가 숨 쉬는 공간 속으로 입체적으로 걸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최근 선보인 ‘Torn and Tied: Reassembled Memories(찢기고 묶인: 재조립된 기억들)’이다. 이 시리즈는 개인적인 고통과 회복의 기록으로, 홍수로 파괴된 스튜디오의 잔해들을 수거해 다시 꿰매고(Stitching), 묶고(Binding), 연결하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수선과 치유’라는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Threaded Fragments’나 ‘Revealed Structure’ 같은 작품들을 보면, 훼손된 캔버스를 조각내 다시 잇는 과정이 마치 우리가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예쁜 장식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들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권채리 작가에게 어울리는 별칭은 ‘상처받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사람’이라는 긴 이름이 어떨까 싶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가느다란 상처의 실타래를 찾아내어 그것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길어 올리는 예술가인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차가운 추상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손을 잡아주는 듯한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다. 부서진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잇는 그녀의 작업 방식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갈구하는 ‘회복’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녀가 캐나다라는 이국의 땅에서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은 그녀 자신의 ‘디아스포라(Diaspora)’적 정서와도 분명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민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겪는 갈등은 마치 찢긴 캔버스처럼 마음의 생채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작가 노트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이민자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재료인 고무 호스, 실, 나무 조각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균형을 이루듯, 그녀의 작업은 한국인이라는 뿌리와 캐나다인이라는 현재를 잇는 아름다운 화해의 장일 수 있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은 개인적인 치유를 넘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인 서사시가 아닐까 싶다.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로서 권채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조용한 행복과 감정적 재충전의 원천’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거창하고 어려운 철학을 강요하기보다, 관객이 작품 앞에 섰을 때 마치 무성하게 자란 공원이나 빈 놀이터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성장과 행복한 기대를 떠올리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기억과 상상 사이를 여행하는 통로"가 되어,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선물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이 작품을 보고 나니 내 마음의 상처도 다시 조립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공감을 얻는 것, 그것이 그녀가 작가로서 바라는 최고의 보람일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권채리 작가는 한국적인 재료와 정신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거장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홍익대 시절부터 다져온 한국적 추상의 흐름, 즉 사물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이우환 화백이나 명상적인 태도로 화면을 채우는 박서보 화백의 정신적 깊이를 존경할 것으로 짐작된다. 해외 작가 중에서는 색채의 조화와 구조적 균형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일상의 사물을 예술적 맥락으로 재배치하는 현대 미술가들에게서 꾸준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작품 속에 층층이 쌓인 레이어와 스크래치는 이러한 거장들의 사유를 자신의 '치유적 추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현재 권채리 작가는 토론토의 대표적 현대미술페어인 'Artist Project'와 온타리오주 곳곳의 갤러리 전시를 통해 대중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꾸준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을 한 올 한 올 엮어가며, 우리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촘촘하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피어나는 긍정의 에너지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