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서 피어난 예술, 지니 유가 건네는 질문
'영원한 손님'이라는 시선으로 이주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지니 유의 예술 세계.
- 베니스 비엔날레를 매료시키고 캐나다 국립미술관이 선택한, 자랑스러운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 지니 유.
- 캔버스 대신 거울과 알루미늄을 캔버스 삼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눈부신 예술로 승화.
- ‘영원한 손님’의 시선으로 경계를 허물고 공감의 영토를 넓혀가는 그녀의 세계를 만나보자.
캐나다 동포 사회에서 우리가 꼭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예술가가 있다. 바로 오타와 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이자, 세계 무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지니 유(Jinny Yu).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1.5세 작가인 그녀는, 단순히 ‘그림 잘 그리는 화가’를 넘어 캐나다 최대 일간지인 The Globe and Mail이 주목하고, 캐나다 국립미술관과 온타리오 미술관(AGO) 같은 최고의 기관들이 앞다투어 작품을 소장하거나 전시해 온 주류 미술계의 거장이다. 특히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사건은 그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니 유의 작품이 왜 이토록 특별한지 살펴보면, 그 비밀은 그녀가 사용하는 ‘바탕’에 있다. 그녀는 흔한 천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패널이나 거울을 사용한다. 그 위에 유채 물감으로 붓질을 하는데, 이게 참 묘한 마력을 발휘한다. 거울 위에 그려진 그림 앞에 서면, 작품을 보는 ‘나’와 내가 서 있는 ‘공간’이 그림 속에 그대로 비치게 된다. 즉, 그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변할 때마다 매번 새롭게 완성되는 것이다. 평면적인 회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람객의 존재를 끌어들이는 ‘입체적인 공간 예술’이자 ‘설치 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경계를 비추는 거울의 화가’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동시에 실제와는 다른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니 유는 한국과 캐나다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는 우리 이민자들의 마음을 그 거울 같은 알루미늄 위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독을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니 유는 자신의 작업을 ‘영원한 손님(Perpetual Gues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캐나다에 살면서도, 혹은 한국에 방문해서도 느끼는 미묘한 이방인 같은 감각같은 걸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슬프게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손님’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객관적인 시선, 그리고 주인이 보지 못하는 공간의 틈새를 발견하는 섬세한 감각이 예술가로서의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손님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은 캐나다의 추상 화가 구이도 몰리나리(Guido Molinari)로 유추할 수 있다. 공간과 색채의 엄격한 구조를 탐구했던 그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지니 유는 그 차가운 구조 안에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뜨거운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도의 거장 자리나 하시미(Zarina Hashmi)가 떠오르기도 한다. 두 작가 모두 ‘집’과 ‘이동’을 주제로 다루지만, 자리나 하시미가 상실의 아픔을 정적인 판화로 그렸다면 지니 유는 거울과 사운드, 거대한 설치를 통해 우리가 그 이주의 현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특히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할 작품은 2015년 베니스를 뒤흔든 ‘그들은 이주를 멈추지 않는가?(Don’t They Ever Stop Migrating?)’라는 대작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유럽의 난민 위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대중 매체가 난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떼’나 ‘파도’처럼 묘사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녀는 거대한 방 전체를 반투명한 천으로 두르고, 그 위에 수많은 검은 잉크 붓질을 쏟아부었다. 방 안에 들어가면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따온 여성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왔어?", "무슨 일이야?", "당신 때문에 아이들이 겁먹고 있잖아!" 같은 두려움 섞인 말들이 사방에서 들릴 때, 관람객은 마치 자신이 거부당하는 난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소리들이 당혹스럽고 무섭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서서 눈앞의 그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거칠게만 보였던 검은 붓질들이 사실은 바람에 흔들리는 천 위에서 얼마나 우아하고 연약하게 움직이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낯선 이들을 향해 느끼는 공포는 사실 우리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난민을 돕자는 구호가 아니라, 타인을 ‘괴물’로 만드는 우리 마음속의 장벽을 허물고 공감의 대화를 시작하자는 다정한 초대장인 셈이다.
이런 깊이 있는 성찰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몬트리올 미술관, 퀘벡 국립미술관, 오타와 미술관 등 캐나다의 권위 있는 기관들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최근에는 토론토 아트 갤러리(AGO)에서 개인전을 열며 그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는데, 지니 유는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단순히 ‘이민자의 애환’으로만 읽히기보다, 우리 사회의 다원성과 다문화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질문들을 끌어내는 ‘토론의 장’이 되길 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니 유는 현재 오타와와 베를린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이민 1.5세라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서, 이제는 전 인류가 고민해야 할 ‘공존’과 ‘환대’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캐나다라는 거대한 땅에서 한국인의 혼을 간직한 채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선 그녀의 행보는, 동포 사회뿐만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자부심과 영감을 주고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지니 유가 건네는 그 깊고 따뜻한 질문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우리도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주인이, 혹은 예의 바른 손님이 되어보는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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