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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숨결로 빚어낸 영혼의 초상, 작가 박셜리가 건네는 다정한 위로

부모님의 손과 숲의 빛을 통해, 평범한 삶 속에 깃든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화가 박셜리.

  • 부모님의 주름진 손에서 이민자의 서사를 읽어내고, 숲의 고요한 그늘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발견하다.
  • '더 적은 붓질로 더 많은 본질을(Doing more with less)' 담아내어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예술로 승화.
  • 시간이 멈춘 듯한 부드러운 사실주의 너머로 대상의 가장 깊숙한 내면과 교감하는 화가.

캐나다 온타리오의 예술적 성지라 불리는 앨턴 밀 아트 센터(Alton Mill Arts Centre)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와 울창한 숲의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이곳에 둥지를 튼 박셜리(Sherry Park)의 스튜디오는 그녀의 작품이 왜 그토록 평온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지 한눈에 짐작하게 한다. 그녀는 매일 숲을 산책하며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관찰하고, 그 빛의 입자들이 자연과 사람 위에 내려앉는 순간을 포착한다. 박셜리의 작업이 유독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대상의 겉모습을 똑같이 복제하는 차가운 사실주의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영혼의 온도’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기초로 작업하면서도 결코 사진에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붓 자국이 보이길 원한다”고 말하며, 부드러운 붓질 속에 대상에 대한 정직함과 깊은 애정을 층층이 쌓아 올린다.

그녀의 작업에서 인물과 풍경은 서로 다른 갈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과 공기, 그리고 생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박셜리에게 인물과 풍경은 같은 무게를 지닌 오브제다. 인물의 초상에서 세월의 흔적이 담긴 주름과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읽어내듯, 그녀는 숲의 나무들에서도 고유한 성격과 생명력을 발견한다. 케이프 브레턴 하이랜드 국립공원에서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그녀는 혼자 남겨진 숲의 고요함 속에서 나무들이 어떻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빛을 받아들이는지 깊이 응시했다. 인물의 얼굴을 그릴 때 4~5번의 레이어를 쌓으며 내면의 빛을 끌어올리는 정성과, 풍경화에서 과감한 붓질로 나무의 골격을 잡아나가는 활력은 결국 대상의 본질에 닿고자 하는 하나의 열망에서 비롯된다.

이런 그녀에게 어울리는 작가적 닉네임을 붙여준다면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빛의 기록자’라 부르고 싶다. 박셜리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 예를 들어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는 평범한 모습이나 숲길을 걷다 마주한 이름 모를 나무의 그림자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아낸다. 그녀의 작업 철학인 ‘Doing more with less(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하기)’는 단순히 붓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생기가 가장 선명히 살아나는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멈출 줄 아는 예술적 지혜를 의미한다. 캔버스 위 인물의 눈빛이 살아나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순간, 그녀는 과감히 붓을 내려놓는다. 그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꽉 막힌 완성형이 아니라, 관객이 숨 쉴 틈이 있는 열린 공간으로 다가온다.

캐나다에서 박셜리가 펼쳐 보이는 사실주의 작업은 그녀의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담아내는 가장 따뜻한 그릇이다. 1976년, 열 살 무렵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그녀에게 예술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었다. 특히 그녀가 애정을 쏟는 부모님의 초상화 시리즈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겪어낸 인고의 세월과 사랑에 대한 헌사다. 뜨개질과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의 섬세한 손길과 늘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기록하던 아버지의 시선은 작가의 예술적 원천이 되었다. 최근 작고한 아버지를 기리는 작품이나 부모님의 일상을 담은 ‘Lunch’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민자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가족애가 뭉클하게 전해진다. 그녀에게 풍경화는 이러한 삶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안식처이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인 숲은 이민자로서 느꼈을 고립감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박셜리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랄까? 그녀는 평범한 이들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화가로 남고 싶어 한다. 그녀는 특히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품위 있는 성숙함’을 사랑한다. 세월을 견뎌낸 이들의 강인함과 정체성을 화폭에 담아낼 때, 그녀는 예술이 가진 가장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코리언 캐내디언으로서 그녀의 정체성은 한국적인 정서의 섬세함과 캐나다 대자연의 광활함이 조화를 이루어, 국경을 넘어 모든 이의 영혼에 닿는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면서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호크니가 일상의 풍경과 인물을 밝고 명료한 색채로 찬미하며 자연의 생동감을 노래했듯이, 박셜리 역시 빛의 흐름을 쫓아 대상의 생명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최근의 풍경화에서 보여주는 숲의 공간감과 빛이 여과되는 방식은 호크니가 보여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호크니의 작업이 때로 그래픽적이고 대담한 색채의 유희를 보여준다면, 박셜리는 고전적인 유화 기법의 깊이와 부드러운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훨씬 더 내밀하고 영혼 중심적인(Soulful) 접근을 취한다. 피렌체에서 수학하며 다진 탄탄한 데생 실력이 그녀의 작품에 클래식한 품격을 부여한다면,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현대적인 따뜻함을 완성한다.

박셜리가 직접 언급하며 존경을 표한 예술가들은 그녀의 작업 세계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앵그르 같은 고전 대가들로부터 완벽한 형태미와 빛의 운용을 배웠다. 또한 현대 작가 중에서는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의 강렬한 실존적 관찰력과 폴 페니악(Paul Fenniak)의 사실주의적 서사성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프로이드의 시선이 때로 해부학적으로 냉철하다면, 박셜리는 그 차가운 관찰에 ‘공감’이라는 따스한 필터를 입혔다. 그녀에게 예술이란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술적 성취는 이미 화려한 수상 경력이 증명하고 있다. 캐나다 미술계에서 권위 있는 엘리자베스 그린쉴즈 재단 기금(Elizabeth Greenshields Foundation Grant)을 받았으며, 캐나다 화가 협회(Society of Canadian Artists)로부터 메리 프랫 크리스탈 상을, 솔트 스프링 국립 미술상(Salt Spring National Art Prize)에서 심사위원 선정상을 받는 등 그 실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캐나다 전역의 수많은 개인 컬렉터들에게 소장되어 있으며, 온타리오 미술가 협회와 미국 초상화 협회 등의 정회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셜리는 오늘도 앨턴 밀의 스튜디오에서 숲의 숨소리를 들으며 붓을 든다. 그녀가 캔버스에 칠하는 것은 단순한 물감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눈부신 아름다움이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믿는 그녀의 손끝에서, 지워지기 쉬운 우리의 일상은 영원히 바래지 않을 보석 같은 초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마침 ‘붓질을 최소화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는 작가의 인터뷰 한 문장을 떠올렸다.

“제가 사용하는 팔레트는 프탈로 블루(Phthalo Blue), 프탈로 그린(Phthalo Green), 번트 엄버(Burnt Umber), 번트 시엔나(Burnt Sienna), 옐로 오커(Yellow Ochre), 캐드뮴 레드(Cadmium Red), 캐드뮴 옐로 라이트(Cadmium Yellow Light), 티타늄 화이트(Titanium White), 마스 블랙(Mars Black)입니다. 저는 어떠한 매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멋진 ‘예술선언’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그녀가 엮어가는 ‘붓질이 보이는 빛의 연대기’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따스한 등불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