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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조각으로 빚어낸 따스한 위로, 작가 신희정이 보여주는 ‘기억의 조각’

겹겹이 쌓아 올린 한지 틈새로 디아스포라의 상실과 회복을 보듬으며, 단조로운 삶의 조각들을 깊이 있는 인생의 풍경으로 완성해가는 ‘겹의 예술’.

  • 그리운 고향의 종이 한지를 찢고 다시 붙이며, 흩어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예술가.
  •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어, 겹겹이 쌓인 종이 틈새로 우리네 인생의 깊은 사연을 담아내다.
  • 캐나다와 한국을 잇는 마음의 다리가 되어,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 한 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될 수 있을까? 캐나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 신희정의 작품을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고요한 숲이나 비 내리는 도시, 혹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만 개의 종이 조각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정교한 ‘기억의 탑’임을 알게 된다. 신희정의 작업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종이라는 따뜻한 매체로 너무나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정성이 가득하다. 먼저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 뒤, 그것을 다시 과감하게 찢거나 자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성껏 만든 것을 왜 다시 부수는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작가에게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이별, 이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험들이 마치 종이가 찢기는 아픔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찢어진 조각들을 다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겹치고 붙여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상처받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도 내 삶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들여 더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체와 재구성’이 신희정 작품의 가장 큰 독창성이다.

많은 분이 신희정의 작품을 보고 “이것은 그림인가요, 아니면 조각인가요?”라고 묻곤 한다. 사실 그녀의 작품은 평면과 입체의 어느 한쪽으로만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캔버스라는 평평한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수십 층으로 쌓아 올린 한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는 작품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겹의 예술’ 혹은 ‘종이로 쌓은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납작한 종이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깊은 입체감은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작가가 주된 재료로 사용하는 ‘한지’는 그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다. 신희정은 한지가 가진 여러 특징 중에서도 특히 ‘질긴 생명력’과 ‘부드러운 포용력’에 주목한다. 서양의 종이와 달리 한국의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아무리 찢어도 그 끝에 가느다란 섬유질이 남아 있다. 작가는 이 보풀거리는 섬유질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친 결을 그대로 드러내어,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간직하고 있는 ‘본질적인 뿌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한지는 앞뒤의 색이 은은하게 비치는 성질이 있는데, 작가는 이를 이용해 기억의 희미함과 또렷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층층이 쌓인 한지는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진 어릴 적 기억 같기도 하고, 지금 당장 느끼는 강렬한 감정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특별한 작업을 하는 신희정 작가에게 나는 ‘기억을 깁는 마음의 정원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엉망이 된 정원을 정성스레 손질해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꾸는 정원사의 손길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그것들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며 조화를 이끌어낸다. 단순히 종이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위로하는 마음을 함께 깁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 앞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정성스러운 ‘돌봄’의 기운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신희정 작가가 캐나다라는 먼 나라에서 굳이 이토록 손이 많이 가는 한지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녀 자신이 겪어온 ‘디아스포라’로서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현재는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정체성이란 늘 고민스러운 숙제였다.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그 사이’의 존재로서 느끼는 불안함과 소외감을 그녀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녀에게 한지는 고향과 연결되는 생명줄과 같으며, 종이를 찢고 붙이는 행위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의식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모든 이주민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코리언 캐내디언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회복의 증거’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아, 한국 종이로 만든 멋진 그림이네”라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처 난 마음도 이렇게 다시 모이면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얻길 원하는 것이다. 두 문화를 모두 품고 있는 작가답게, 그녀의 작품은 한국적인 따뜻함과 서구적인 세련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해외 작가 중에서 그녀와 비교해볼 만한 인물로는 미국의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가 있다.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광고지나 종이를 층층이 붙이고 깎아내어 도시의 지도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신희정 작가와 브래드포드는 ‘종이’라는 재료를 겹치고 깎아내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그 안에 담긴 ‘온도’에 있다. 브래드포드의 작품이 사회의 거친 면면을 폭로하는 차갑고 강렬한 느낌이라면, 신희정의 작품은 한지 특유의 질감을 살려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하고 섬세한 위로의 느낌을 준다. 브래드포드가 도시의 외형을 그린다면, 신희정은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셈이다.

신희정 작가는 세대와 활동 지역은 다르지만, 한국 단색화의 거장인 박서보 화백과 음악적·미학적 공통점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서보 화백이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마음을 비워내는 ‘수행’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주었듯, 신희정 역시 한지를 한 장 한 장 찢고 붙이는 고된 과정을 수행처럼 반복한다. 그녀에게 예술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평화를 찾아가는 명상의 시간이다. 최근 전주에서 가졌던 레지던시 활동과 ‘Still, Wind’라는 전시 역시 이러한 수행의 연장선에 있었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바람처럼 흐르는 그 미묘한 존재의 상태를 그녀는 대형 작품을 통해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그녀의 이런 진정성 있는 활동은 캐나다 현지에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온타리오 예술위원회(Ontario Arts Council)로부터 여러 차례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았으며, 인쇄 특별상과 헬렌 L. 크로스 기념 장학금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그녀의 작품은 캐나다의 여러 공공기관과 갤러리, 그리고 그녀의 진심에 공감하는 많은 개인 소장가의 공간에 간직되어 있다.

신희정의 작품은 우리에게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건넨다. 삶이 때로는 우리를 찢어놓고 아프게 할지라도, 그 부서진 조각들을 포기하지 않고 정성껏 다시 모으다 보면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삶의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녀가 겹겹이 쌓아 올린 한지 조각들 사이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캐나다의 찬 바람 속에서도 한지의 따스한 온기를 잃지 않는 그녀의 작업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한 햇살이 되었으면 한다.

(이 콘텐츠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작성되었으며, 관리자의 부분적 수정 및 검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